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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유산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 무슨 소용 있나

역사유산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 무슨 소용 있나

 

광주·전남지역에서 역사의 숨결이 깃든 근대문화유산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 수년간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도심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때로는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혹은 보존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광주시에서는 최근 20년 사이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문화유산 100곳중 20곳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의회 장재성(더불어민주당·서구1)의원은 지난해 제293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2002년 ‘근대문화유산 전수조사’를 실시할 당시 광주시에는 100곳에 달하는 근대건축물이 있었지만 현재 이 중 20곳이 철거된 상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철거된 건축물은 조대부고 본관, 전남경찰청 민원실, 뉴 계림극장, 현대극장, 수피아여중 특별교실, 송정극장, 대우전기 등 20곳이다. 철거된 20개소를 제외한 나머지 12개소 마저도 과도한 리모델링, 폐쇄 등으로 원형이 훼손돼 관리상태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됐다. 관리상태가 미흡한 근대건축물은 YMCA회관, 수창분식, 광주은행 남부지점, 현대비철금속 등 12개소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경전선 중심역인 남광주역도 철로 이설과 함께 서둘러 철거되었다.

 

개발행위에 사라져가는 문화재

게다가 지난해에는 북구 전방·일신방직 건물이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에게 매각되고,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 동구 조흥은행 충장지점 건물 철거 등이 이뤄져 근대건축물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방·일신방직의 갑작스런 매각소식은 충격적이다. 일제강점기 가동을 시작한 전방·일신방직은 10대 여공들의 애환이 서려 있을 뿐 아니라 광주 근현대사의 굴곡진 사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에 비길만하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특집기사와 칼럼을 통해 방직공장의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고 관광자원화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전남지역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목포시 원도심은 1897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의 주무대가 되었던 옛 조계지 일대로 한 많은 일제 36년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일제시대 가장 번화한 거리로 은행과 쇼핑가, 다방 등이 즐비해 신문물이 유입되는 창구였다. 지금도 호남은행(현 목포문화원), 화신백화점(김영자 화실), 갑자옥(현 모자점) 등 당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2010년까지 멀쩡히 서있던 옛 교도소장 관사와 감시초소는 필자가 취재하던 중 사유지라는 이유로 매각을 방치해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문화재와 사유재산권이 충돌할 경우 대부분 문화재가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완도군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지만 군의 무관심으로 실태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사라져가고 있다.
전남도 ‘전남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사업’(2003.12) 자료에 따르면 완도군에는 일본인여관과 옛 완도경찰서장 관사 등 일본식가옥을 비롯 당사도 등대, 창고, 상가 등 18건이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돼 있다. 현재 군청 주변 성내리, 주도리 일대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병원건물과 상가건물, 상수도 시설 등 다수의 근대문화 유산이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역사유산은 원형보존이 생명


1930년 완도면에는 전체 1천489가구 가운데 일본인이 99가구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은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행정당국은 또 한편으로는 문화관광자원 발굴과 도시재생을 명분으로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광주시는 뒤늦게야 근대건축물이 문화재로 보존 및 도시재생 분야의 거점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매입방안을 포함한 적극적인 대안을 강구하는 한편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 시행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한다.
또한 목포시는 최근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인적ㆍ물적 문화자원을 발굴하기 위해 아카이브 구축에 나섰다. 인물, 사건, 장소를 중심으로 시스템 구축 등 3가지 주요 과업 수립을 목표로 원도심에 산재한 유무형의 근대문화유산 조사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역사유산은 원형보존이 생명이다. 역사유산이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역사유산 보존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모순적인 행정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