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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재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 무슨 소용 있나(수정)

칼럼-문화재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 무슨 소용 있나


최근 수년간 광주·전남지역에서 역사의 숨결이 깃든 근대문화유산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도심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혹은 보존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근래 20년 사이 광주에서만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문화유산 100곳중 20곳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2년 광주시가 ‘근대문화유산 전수조사’ 실시 당시 100곳에 달하는 근대건축물이 있었지만 현재 이 중 20곳이 철거된 상태이다. 철거된 건축물은 조대부고 본관, 전남경찰청 민원실, 조흥은행 충장지점, 뉴 계림극장, 현대극장, 수피아여중 특별교실, 송정극장, 대우전기 등 20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곳 마저도 12개소는 과도한 리모델링, 폐쇄 등으로 원형이 훼손돼 관리상태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앞서 경전선 중심역인 남광주역도 철로 이설과 함께 서둘러 철거되었다.

개발행위에 사라져가는 문화재

특히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에게 매각이 진행중인 전방·일신방직 부지는 보존여부를 놓고 가장 첨예한 논란의 대상의 되고 있다. 
전방은 2017년 공장가동을 완전 중단하고 생산설비를 영암 등으로 이전했다. 공장내 기숙사는 현재 요양병원이 입주해 운영되고 있다. 350여명이 근무하던 일신방직은 작년 11월 가동을 멈추고 광주 평동 2공장과 베트남 공장으로 이전했다. 문제는 설비 이전후 배선과 배관마저 철거해 고철덩어리로 쌓아두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 일부라도 원형을 보전했어야 하는데 광주시가 늑장 대응하는 사이 80여년 세월의 흔적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가동을 시작한 전방·일신방직은 10대 여공들의 애환이 서려 있을 뿐 아니라 광주 근현대사의 굴곡진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고 관광자원화하면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에 비길만한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특집기사와 칼럼을 통해 방직공장의 소중한 가치를 제기했으나 당장의 개발이익에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전남지역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목포시 원도심은 1897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의 주무대가 되었던 옛 조계지 일대로 한 많은 일제 36년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일제시대 가장 번화한 거리로 은행과 쇼핑가, 다방 등이 즐비해 신문물이 유입되는 창구였다. 지금도 호남은행(현 목포문화원), 화신백화점(김영자 화실), 갑자옥(현 모자점) 등 당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2010년까지 멀쩡히 서있던 옛 교도소장 관사와 감시초소는 필자가 취재하던 중 사유지라는 이유로 매각을 방치해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문화재와 사유재산권이 충돌할 경우 대부분 문화재가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완도군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지만 군의 무관심으로 실태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사라져가고 있다. 1930년 완도면에는 전체 1천489가구 가운데 일본인이 99가구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전남도 ‘전남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사업’(2003.12) 자료에 따르면 완도군에는 일본인여관과 옛 완도경찰서장 관사 등 일본식가옥을 비롯 당사도 등대, 창고, 상가 등 18건이 근대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돼 있다. 현재 군청 주변 성내리, 주도리 일대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병원건물과 상가건물, 상수도 시설 등 다수의 근대문화 유산이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군은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역사유산은 원형보존이 생명

그럼에도 행정당국은 또 한편으로는 문화관광자원 발굴과 도시재생을 명분으로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광주시는 뒤늦게야 근대건축물이 문화재로 보존 및 도시재생 분야의 거점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매입방안을 포함한 적극적인 대안을 강구하는 한편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 시행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한다.
또한 목포시는 최근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인적ㆍ물적 문화자원을 발굴하기 위해 아카이브 구축에 나섰다. 인물, 사건, 장소를 중심으로 시스템 구축 등 3가지 주요 과업 수립을 목표로 원도심에 산재한 유무형의 근대문화유산 조사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역사유산은 원형보존이 생명이다. 역사유산이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역사유산 보존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모순적인 행정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