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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강천산 등산

강천산 등산
(1992.06.14. 광주매일 노보) 

산은 뜻밖에 가까이 있었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두 갈래 길 가운데 우리는 예정하지 않았던 다른 길로 이끌리고 말았다. 헌데, 빗나간 선택이 흥미진진한 산행을 예고할줄이야.
1992년 6월14일 오전 8시45분 광주 대인동 공용터미널. 산악회 총무인 나의 도착이 늦어지는 것에 초조해하던 이승수 부장님이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내심 안도하면서도 ‘왜 늦게 오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그 시간까지 모인 회원은 12명. 전날까지 참석하기로 한 사람이 17명이니 5명이 더 와야 한다. 목적지인 송광사행 버스출발 시간은 15분 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 도착해 표를 끊으려 매표소엘 가보니 창구대신 자동매표기가 놓여 있었다. 1인당 요금이 1,780원이니 천원권 스무장 남짓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지폐가 구겨진 것은 이내 토해버리고 만다. 기계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15장을 구입하고 달려갔을 땐 송광사행 버스는 오간데 없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원망과 따가운 눈총….
이 때 김재철 기획간사가 배태랑 산악인답게 순창 강천사 코스를 제안, 모두가 동의하자 광주매일산악회는 비로소 첫 산행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즐거움을 안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지 50분만에 강천사에 도착했다. 우리는 김 간사의 리드에 따라 강천사-수문-금성산성-담양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등반하기로 했다. 날씨는 구름이 약간 있었지만 등산하기에 양호한 조건이었다.
입구 매표소를 지나 강천사 구경을 마친 시각이 오전 11시45분. 절 부근 계곡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음식을 준비할 땐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분업체제를 이뤄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렸다. 산속에서 직접 준비해서 먹는 음식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 이승수부장님이 가져오신 3년 숙성 매실주는 그야말로 혀끝을 녹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예정된 코스대로 수문을 거쳐 금성산성을 향해 나아갔다. 가는 길에 여기저기에 ‘광주매일산악회 자연보호’ 리본도 매달았다. 계곡을 지나 가파른 능선 구간을 얼마간 오르고 있을 때 한 회원이 다리에 쥐가 나 주저앉고 말았다. 이석근회장님이 구급처치에 나서 10분 가량 맛사지를 하자 쥐가 풀리면서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숨차는 오르막길을 넘어서자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다. 회원 모두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해본다. 정상에서 인간세상을 바라보며 사념에 잠긴다. 뭇사람들이 한결같이 얘기했듯이 얼마나 옹졸한 마음으로 살아왔던가. 그리고 티끌같은 욕심에 얼마나 스스로를 핍박했던가.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선가에 귀의한 듯 저 멀리 엷은 구름속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이름 모를 산봉우리들과 선문답을 나눈다.
시지프스신화처럼 산정에 오른 인간은 다시 내려가야 한다. 이제부터 등산로는 금성산성에 담양댐 입구로 이어지는 하산코스이다. 완만한 산길이 퍽 운치가 있다. 녹음이 우거져 향긋한 숲내음이 좋다. 그렇게 1시간을 걸으니 마침내 시야가 훤히 뚫리면서 담양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자락 아래엔 담양호가 하늘빛을 담은 채 한폭의 수채화처럼 싱그러움을 반짝이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4시간 남짓의 산행. 누가 선뜻 나서서 뭐라 표현은 안했지만 광주매일산악회 회원들의 가슴마다엔 잔잔한 산그림자가 파문짓고 있었다. 그 것은 아마 ‘우리도 저 산처럼 푸르게 솟아있자’는 다짐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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