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이미 산속은 가을, 밤송이가 떨어진다

-어등산 등산기
이미 산속은 가을, 밤송이가 떨어진다

어등산 숲길

퇴직으로 인해 자유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매일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된다. 또 주중에 골프도 즐기고 등산도 할 수 있어 좋다. 퇴직 후 가장 많이 한 일이 등산이다. 그중 집 근처에 있는 어등산을 자주 오르곤 한다.
나는 젊은 시절 산을 무척 좋아했다.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새로운 다짐을 할 때면 언제나 무등산을 찾곤했다.
최근 광산구로 이사오면서 이제는 어등산이 나의 친구가 되었다.
8월 어느날, 오늘도 나홀로 어등산을 향한다. 차로 5분 쯤 가면 광주여대 뒤편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어등산 등산로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등산로 안내판에는 9개 코스가 있으나, 주 코스는 동자봉 초입-산정약수터 삼거리-(전망대)-절골 삼거리-석봉-등용정으로 이어지는 길이 뼈대를 이룬다. 거리는 대략 왕복 12㎞에 달한다.
대부분의 산이 그렇듯 어등산도 초입이 가파르다. 10여분 쯤 계단을 걸어올라가야 한다. 막 숨이 찰 쯤에 동자봉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는 늘 등산객이 붐빈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온 사람이 잠시 머물며 호흡을 가다듬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정자 우측편 등산로를 따라 산정약수터 삼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숲속으로 하얗게 뻗은 길이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연일 35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산속으로 들어오니 제법 열기가 가라앉는다. 산길 주변은 소나무, 밤나무, 떡깔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다. 중간중간 신우대 숲이 정겹게 군락을 이룬다. 
매미 울음소리가 숲속의 빈틈을 메우려는 듯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간혹 다람쥐가 나무에서 내려와 쫑긋 꼬리를 세우며 시선을 마주친다. 
가벼운 걸음으로 걷다보니 어느덧 산정약수터 삼거리에 당도한다. 삼거리답게 세 갈래 길이 나타나고 주변에 벤치 등 쉼터가 마련돼 있다. 주말이면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노점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일종의 숲속 만남의 광장이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목을 축이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석봉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발걸음은 전망대를 향한다. 숲속으로 이어지던 길이 잠시 벗어나 하늘이 보인다. 절골마을과 전망대 사이 갈림길은 노천탕처럼 훤히 드러나 있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신우대 숲을 지나자 경사가 가파르다. 발걸음 속도가 더디다.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한 끝에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는 산 중턱에 원두막처럼 자리잡고 있어 운치가 있다. 발아래 어등산 골프장 푸른 잔디가 한눈에 들어온다. 배낭을 열고 가져온 과일과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가야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다시 몸을 일으켜 절골 삼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길은 가파르고 걸음걸이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내려갈까’ 하는 유혹이 일어난다. 그러나 약한 마음을 억누르고 발길을 재촉한다. 그렇게 두 개의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 절골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목을 적시고 석봉을 향해 진군한다. 한 걸음 한걸음 10여분을 가다보니 석봉이다. 말 그대로 바위로 이뤄진 소박한 봉우리이다. 큰 산들의 정상은 천황봉이니 장군봉이니 하는 이름이 붙지만 석봉은 돌봉우리 그 자체이 다. 그래도 석봉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의 풍모를 잃지 않는다. 

 

어등산 등용정


석봉에서 조금 더 가면 어등산의 가장 끝자락 등용정에 도착한다. 등산로 초입에서 이곳까지는 약 6㎞에 달한다. 정자에 중년 여성 등산객들이 앉아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 가만히 엿들으니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다. 
어등산 가장 먼 곳까지 왔다는 성취감을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은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오를 때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가 나간다.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온다. 산에서 부는 바람은 벌써 가을느낌이 난다. 길가에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 이미 산속의 시계는 가을을 가리키고 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들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0) 2021.08.22
만연산에 올라 인생교훈을 얻다  (0) 2021.08.16
강천산 등산  (0) 2021.05.24
해남 두륜산 기행  (0) 2021.05.24
봄 기차(수필)  (0) 202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