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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시란 무엇인가(전체원고)

<시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시에 관심이 있거나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화두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시란 무엇이며 왜 시를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시가 되는지하는 일련의 물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질문은 이제 막 시 쓰기에 입문한 초심자뿐 아니라 한 평생 시를 써온 중견시인들도 끊임없이 그 해답 구하기에 골머리를 앓는 난해하고 근원적인 물음이다. 이는 마치 중국 장가계의 운무에 싸인 기암괴석 산봉우리를 더듬는 일처럼 첩첩한 난제이다.

 

그 해답 구하기 위해 젊은 날에 숱하게 방황

 

필자는 이 해답을 찾기 위해 20대 젊은 시절 무던히도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지식은 옅고 혈기는 넘치던 때라 몸으로 터득하고자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일례로 여름 장마철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말끔히 차려입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비를 흠뻑 맞으며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빗방울의 촉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만의 사색에 잠기는 기인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어쩌면 저 미친 놈, 날궂이 하고 있네라며 손가락질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대인동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가곤 했다. 구내매점에서 파는 중앙지 11일자 신문을 사기 위해서다. 해마다 각 신문의 신년호에는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와 함께 당선작에 대한 심사평과 당선소감이 실리는데 그 글을 읽으면 시의 안목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신문들을 한 무더기 사가지고 와서 하나 하나 펼쳐가면서 읽는 재미는 만화책을 읽는 것보다도 훨씬 흥미진진했다.

뿐만아니라 대학 재학 중에는 대학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문학서적을 빌려서 탐독하기도 했다. 학부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전공서적보다는 오히려 문학책을 더 많이 대출해서 읽었다. 심지어는 시험기간 중에도 문학책을 빌리는 내 모습을 본 같은 학과 친구들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문학과의 열애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낙서나 다름없는 시를 쓰며 장차 시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렇게 4년이 흘러 대학문을 나와 취업을 하려고 보니 학점은 낮고 취업문턱은 높기만 했다.

그래도 글을 쓰려면 신문사에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경향 각지 여러 신문사에 도전 끝에 이듬해 광주의 모 신문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 후 1996년 문화부에서 문학담당 기자를 하면서 시의 세계에 한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특히 그 해는 문화부가 지정한 문학의해여서 전국 신문사들이 일제히 문학특집을 개설하는 등 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필자도 그 해 기획시리즈를 만들어 우리지역은 물론 중앙문단의 유명한 문인들을 만나 취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 과정에서 문학에 대한 애착이 더욱 뜨거워졌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문제인식도 한층 깊어졌다.

 

외국 번역시집 읽으며 시인의 꿈키워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을 풀어보려는 나의 노력은 사춘기부터 시작되었다. 그 중 하나가 시집을 사서 읽는 것인데 나는 주로 외국 번역시집을 많이 사 모았다. 틈틈이 시내에 볼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충장로 서점가에 들러 시집을 사오곤 했다. 대체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 외국 시인들의 시집이 주종을 이루었다.

존 키이츠, 폴 발레리, R.M. 릴케, W. 워즈워드, E.A. 포우, 바이런, 예이츠, T.S. 엘리어트, 브라우닝 등이 그때 내가 접한 시인들이다.

또한 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구입한 영원한 세계의 명시집’(1980, 한림출판사) 시리즈가 지금도 서가에 꽂혀있다. 엽서 두 장 정도의 사이즈에 흰색 장정본으로 제작된 명시집은 섬세한 책 내용뿐 아니라 요즘 보기 드물게 고급스럽게 제본이 되어 내가 애장하는 책이 되었다.

나는 외국 시인 가운데 특히 R.M. 릴케와 E.A. 포우에 심취했다. 릴케의 경우는 장미를 좋아해서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라는 호칭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그가 쓴 말테의 수기를 읽으며 몽롱한 시 세계에 빠져들었다. E.A. 포우는 그의 어둡고 우울한 삶이 나의 정서와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춘기인지라 뭔가 강렬한 감성적 에너지에 불꽃이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를 읽으며 때때로 모방하는 시를 머리를 쥐어짜며 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낱 낙서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에게 시인의 꿈을 또렷이 가슴에 새기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또한 나는 시의 이론 탐구에도 관심이 많아 시론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처음 구입한 시론책이 시 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의 이해-시론’(1979, 송원문화사)이다. 대학 입학하기 전이라 그 당시 나의 지식수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그 책을 소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해서 교양국어, 현대시의 이해 등 관련된 과목을 수강하면서 시 이론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었다. 또한 신문사에 입사해 문학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집출간 기사를 쓸 때마다 맨 뒤쪽에 수록된 시 해설을 읽으며 다양한 시론을 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저 시를 쓰는데 몰두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론 혹은 문학이론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시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젊은 시절 나의 경우처럼 이론 공부는 소홀히 한 채 시 쓰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물론 습작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더 완성도 있는 충만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론을 탄탄하게 다지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참고로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시론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춘수, 시론, 1979, 송원문화사

문덕수, 오늘의 시작법, 2004, 시문학사

송수권, 송수권의 체험적 시론, 2006, 문학사상

이지엽, 현대시 창작강의, 2005, 고요아침

임환모, 한국 현대시의 형상성과 풍경의 깊이, 2007, 전남대출판부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시읽기, 2011, 웅진지식하우스

이수정, 시의 이해, 2018, 지스트프레스

 

시는 정직성과 통찰력, 정신의 완전성을 형상화한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제 말머리를 본론으로 향한다.

시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수 많은 문학이론가와 시인들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들이 언급한 코멘트를 하나씩 살펴본다.

영국 낭만주의 초기 시인 W. 워즈워드는 시란 강력한 감정의 자연발생적 흘러넘침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시인이란 특별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하는 한 사람이라는 매우 근본적인 인식을 가져야 하며, 시는 평정 가운데서 회상된 정서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했다.

또한 워즈워드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를 이끌었던 쿨러리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비일상적인, 초자연적인 요소를 현실 세계로 끌어들이는데 주력하였다. , 이들은 일상의 사물에 상상력을 가하여 새롭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시의 목표로 삼았다.

미국 시인 R.W. 에머슨(1803-82)은 그의 유명한 산문집 중 하나인 The Poet(1884)에서 자신의 시론을 논술했다. 그가 말하는 시론의 요지는 첫째 시의 소재는 무한하다는 것이다. 사고가 모든 것을 시적 용도에 맞게 만든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시의 형식은 그 자체의 구성을 갖는 시상에서 생겨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시인이 진실로 영감을 받으면 그 형식은 저절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능력은 자연의 양극성을 조화시키고 영혼의 본질과 의미를 파악하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말하고, 시간과 인습을 극복하고 인간을 낡은 사고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사고를 고취하고 잃어버린 지식을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우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창작활동의 본질은 정서의 전달이라고 주장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철학자 김태길 전 서울대교수는 새로움이 없는 작품은 문학이 될 수 없다. 시는 순화된 순간의 인간 심정의 아름다움 즉 미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적 활동의 한 유형이라고 말했다. (김태길, 수필산책p.170)

러시아 형식주의자 티니야노프를 비롯한 학자들은 문학이 실용적인 언어와 구별되는 것은 문학은 구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시는 실용적인 언어에 대하여 일종의 통제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따라서 시의 구성적 특성에 대하여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실용적인 언어는 왜곡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sation)’를 시의 본질로 생각했다.

그 이유에 대해 우리는 결코 사물에 대한 감각작용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없으며, 일상적인 삶에서 그런 감각작용은 상당한 정도까지 자동화(automatisation)’ 되어진다고 피력했다.

이 밖에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예술은 사물이 알려지는 대로가 아니라 그것이 인식되는 대로 사물에 대한 감각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예술의 기법은 대상을 낯설게 만들고, 형식을 어렵게 만들며 감각작용을 난해하게 만들고 그것을 길게 연장시키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감각작용의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그것은 길게 지연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대상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여러 요소들이 전경(前景)과 배경(背景)의 관계속에서 구성되는 역동적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고어적인 어법과 같은 어느 특정한 요소가 소멸된다면 플롯이나 리듬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그 작품의 시스템에서 지배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기 마련이다. 예술이라는 원주(圓周)는 항상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회구조와 항상 역동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클렌스 브룩스는 모든 위대한 시가 그러하듯이 시는 정직성과 통찰력과 정신의 완전성을 형상화한다고 말했다.

 

상상력으로 일상에 순화된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시적 목표

 

3부에서는 문학이론가들과 유명 문인들이 설파한 시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저마다 시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력 있는 정의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 지역 시인의 시적 정의를 살펴볼 차례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봄비로 널리 알려진 이수복(1924~1986)의 시 그 나머지는시적 탐구에 대한 사유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수복 시인은 전남 함평 출신으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문학파의 영향을 받아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써온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 시는 왜 노을에 비끼는 고원지대를 노을에 비끼는 고원지대 그것으로서만 서경(敍景)하지 못할까. 거기에다 왜 무슨 천고의 비밀이라도 쭈굴시고 앉아서 새김질하고 있는 듯한 스핑크 스나 그런 류의 저무는 표정을 새기려고만 들까.

내 시는 왜 자강불식(自彊不息) 돌고 있는 해와 달과 뭇별을 자강불식 돌고 있는 해와 달과 뭇별 그것으로서만 살피고 창랑의 파도소리를 창랑의 파도소리 그것으로서만 듣지 못할까. 왜 내외로 있는 여러 일을 내외로 있는 여러 일 그것으로서만 끄덕이고 그 나머지는 잠점해버리지 못하는 걸까.” (그 나머지는전문)

이 시는 이수복 시인 본인의 시작(詩作) 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의 형식을 빌어 토로한 글이다. 얼핏 보기엔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 내면에 깃든 뭔가를 찾아내려고 끙끙거리는 자신의 덧없는 노력을 자책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시의 논지는 여러 일을 내외로 있는 여러 일 그것으로서만 끄덕이고 그 나머지는 잠점해 버리지 못하는 걸까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글의 참 의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안타까워 하는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표면적 진술과 정반대로 해석해야 올바르게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나의 시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우리는 국어 교과서에서 음악성(운율)-회화성(이미지)-철학성(주제) 3박자를 모두 갖춘 시가 좋은 시라 배운 바 있다. 원래 시는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고대에 시가(詩歌)는 한 몸이었다. 근세에 이르러 음악과 분리되면서 회화성과 철학성이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시는 극단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매우 곤혹감을 느끼게 한다. 사회가 첨단 문명으로 치달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과격한 탈모더니즘 혹은 초현실주의는 자가당착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시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모체로 태어난 예술이다. 아무리 거친 언어로 표현되더라도 감성이 배어 있으면 시가 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세련된 문장의 시라도 감성이 메말라 있으면 생명력 없는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다시 3부로 돌아가서 시에 대한 여러 정의를 반추해보면, 필자는 W. 워즈워드의 시 세계를 추구한다. 상상력으로 일상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 순화된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시적 목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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