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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왜 은퇴자들은 산으로 가는가

왜 은퇴자들은 산으로 가는가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퇴직 후 산을 자주 오르고 있다. 대체로 집 근처 어등산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가끔 무등산도 오른다. 이전에는 퇴직하거나 실직한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오르거나 아니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오르른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그 입장이 되어보니 왜 은퇴자들이 산을 찾게 되는지를 나름 알것만 같다.

우선 퇴직을 하게되면 생활패턴이 갑자기 바뀌게 된다.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게 직장인의 일상인데, 이 루틴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 조직에서 벗어나 외톨이 신세가 되다보니 갈데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얼마간은 주변사람들이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해서 식사 초대도 하고 골프 초청도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 하나 둘 인간관계가 끊기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사회생활이란 게 원래 사회적 포지션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그 포지션에서 물러나면 자연히 관계도 소멸된다.

은퇴자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바로 은둔의 심리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집에 있는 것보다 산에 있는 게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출근한 평일에 나홀로 집에 있으려면 이것저것 잡념이 생겨난다. 책을 읽어도 집중이 잘 안되고 TV시청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나도모르게 무력감과 우울증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산에 있으면 누구 눈치볼 일도 없고 잡념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숲속의 아늑함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더욱이 요즘은 가을철이라 땀도 흐르지 않고 등산하기에 안성마춤이다.

산속은 벌써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산길 주변에 떨어진 밤송이가 널려 있다. 여름 내내 땡볕에 그을린 나뭇잎들이 스르륵 스르륵 떨어지고 있다. 낙엽들이 내뿜는 향기는 더할 나위 없이 향긋하다. 그 냄새를 깊이 들이쉬면서 산을 오르면 저절로 마음이 상쾌해진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는 옛말에 저절로 공감이 간다. 집에 있으면 온갖 잡념으로 심란스러운 마음이 산속에 들어오면 정화되고 정돈된다. 그리고 사색하는 철학자가 되는 기분이다.

은퇴자들이 산으로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취감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직장의 일을 통해서 성취감을 얻었지만 퇴직하면 마땅히 성취감을 느낄만한 대상이 많지 않다. 그러나 등산은 묘하게 성취감을 안겨준다. 아마도 힘들여서 목표지점을 향해 노동을 하기 때문에 얻어지는 보상효과인 것 같다. 등산을 한다고 해서 소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 만족감은 금전적 소득 못지 않다.

세 번째 등산은 신체를 단련해서 자신감을 높여준다. 산은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신체 전반에 운동효과를 가져온다. 수개월전 처음 어등산을 오를 때는 심장이 터질 듯 고통스러웠으나 지금은 가볍게 오른다. 그만큼 다리의 근력이 형성됐다는 증거일 터이다. 퇴직하고 나면 긴장이 이완돼서 그런지 급격히 몸에 이상이 생긴다. 심리적 공황상태가 신체에 영향을 미친 원인도 있을 것이다.

은퇴자들의 상당수가 퇴직 후 5년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퇴직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변화가 크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이다. 그것은 바로 꾸준한 등산을 통해서 마음과 몸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위해서 등산을 자주하도록 하자. 산속에서 힐링하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자. 그래서 인생 2막을 아름답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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