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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주 송정공원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자

광주 송정공원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자

 

박준수 시인경영학박사

 

4월 도심속 벚꽃 행렬이 눈부시게 환하다. 그 화사한 꽃등이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어머니의 손길처럼 보드랍게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벚꽃이 만개한 곳이면 어디든 상춘객들로 북적거린다. 마치 축제가 열린 듯 꽃과 사람이 어우러져 봄의 환희를 만끽하고 있다.

광주 시내에서 벚꽃 명소로 꼽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예전에는 농성동 상록회관 벚꽃이 가장 으뜸이었으나 그 자리에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 가장 핫한 곳 가운데 하나로 광주 송정공원을 꼽을 수 있다. 광산구 금봉산 자락에 위치한 송정공원 일대에는 수 십 그루 고목들이 피워낸 벚꽃이 군락을 이루며 이색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민족혼과 일제잔재 명암 뚜렷

 

송정공원은 광주공원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 도시공원이다. 일제는 이들 공원에 신사를 짓고 주변에 벚나무를 심어 놓았다. 송정공원 신사는 1922년 신명신사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1940년 송정신사로 개명되었고 이듬해 417일 새롭게 단장되었다.

일제는 공원 가장 명당 자리에 신사를 세웠는데 신전과 신찬소(제단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는 헐리고 배전건물(일반신도가 참배하는 공간)이 현재 대한조계종 산하 금선사로 활용되고 있다. 금선사 건물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 신사로 알려졌다. 공원 안에는 신사 뿐 아니라 일본군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충혼비를 비롯 석등, 돌계단, 석축 등 일제 잔재가 공원 곳곳에 남아 있다. 광주시는 지난 2020년 옛 신사건물 앞에 단죄비를 세워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송정공원에는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픈 역사의 기억과 더불어 순국선열의 항일정신과 빛나는 예술혼이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의병대장 금제 이기손 장군의 의적비, 국창 임방울 선생의 기념비, 용아 박용철 시인의 시비가 건립되어 송정공원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애국혼을 일깨워준다.

이 가운데 용아 박용철(1904-1938) 시인의 시비는 필자에게 특별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1996년 문학의해를 맞아 용아의 시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이곳에 들러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1985년에 세워진 용아 시비에는 동판으로 제작된 그의 초상과 함께 대표작 떠나가는 배가 새겨져 있다. 용아는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문학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김영랑, 정지용과 더불어 순수시 경향의 시문학파를 결성해 억눌린 우리 민족의 정서를 고양시켜 자긍심을 높였다.

또한 송정공원에는 노동운동의 선구적 인물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의미를 더 해준다.

일제강점기 호남선이 송정역을 경유하면서 송정리는 노동자 계급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일제는 광주 일대에서 생산된 쌀을 송정역에서 수집해 철도를 이용, 목포로 운송해 일본 본토로 실어갔다. 그 과정에서 수탈당해야 하는 우리 민족과 노동자들의 한과 울분이 투쟁으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반일감정이 장차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분출되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송정공원은 한 시대가 응축된 공간이다.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을

 

뿐만 아니라 송정공원은 송정도서관과 노인당이 함께 있는 세대 공감의 공간이다. 광주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송정도서관은 청소년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지식 산실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3층 규모 건물에는 어린이도서관, 강의실, 정보자료실, 열람실, 정기간행물실 등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구청에서 운영하는 구립 도서관이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에 문을 닫는 것과 달리 이곳은 한달 두 번만 휴관해 시민들이 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송정도서관에 들르면 2층 정기간행물실에 비치된 여러 분야의 전문서적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면 노인당 건물 사이 하얀 이파리를 펼치며 피어있는 목련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리고 때때로 기차가 지나가면서 울리는 건널목 경보음이 딸랑딸랑 마음에 울려 퍼진다. 봄 햇살을 맞으러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순간이다.

이처럼 송정공원은 살아 있는 역사와 책과 숲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마치 대학 캠퍼스와 같은 곳이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 특별한 장소인 송정공원을 역사공원으로 가꾸어 산 교육장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