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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콩대를 뽑으며

콩대를 뽑으며

 

박준수

 

동짓달 무서리 내린 텃밭에서

무성한 잡초 사이로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콩대를 뽑았다

지난 여름 밭도랑에는 콩만 심었는데

구순의 장모님이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어느 순간 풀들이 우점종이 돼버렸다

건너편 묵은 밭도

녹두는 까맣게 말라죽고

잡초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콩대를 거두어 마당에 옮겨놓으니

장모님이 가지런히 펴서 햇볕에 말리신다

나는 잡초를 한데 모아서 불에 태웠다

모락모락 피어오른 연기가 초겨울 들판을 가득 메운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성경말씀을 깨달았다

알곡은 거두어서 광에 저장하고

검불은 불에 태워진다는 것을,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느 쪽일까

알곡일까, 검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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