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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2)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2)

 

그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그녀와 재회한 것이다.

나는 그 추억의 현장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서 마레지구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녀의 집을 나와 다리를 건너서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은 예전과 다름없이 파리의 느낌그대로였다.

나폴레옹시대에 건설된 도시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들이 구획마다 비슷비슷하게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닮은꼴의 건물들이 가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그래서 이방인 혹은 여행자들이 혼자서 도시를 배회하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도 그녀의 집을 찾지 못해 여러 번 주변을 맴돌다 미아가 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상념에 잠긴 사이 버스가 마레지구 입구에 도착하자 그녀는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마레지구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오렌지 쥬스를 시키고 나는 토스트를 주문해서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

잠시 후 식당을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서점 건물 처마 밑에 비둘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서점 유리창에 책 표지가 전시돼 있었는데 마치 충장로 어느 서점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는 마레지구 골목길을 따라 말없이 걸었다. 골목 풍경은 10년 전 기억속의 거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조용하고 단조로웠다. 10년 전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여러 사람이 어울려 뜨겁게 열변을 토하던 노천카페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