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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6)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6)

 

그녀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영화 좋아 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물론 좋아하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라고 다시 물었다.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하자 그녀는 한국에 돌아가면 꼭 그 영화를 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영화의 줄거리가 궁금해 어떤 영화냐고 묻자 그녀는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다며 수줍은 미소와 함께 팔짱을 다시 한번 바짝 붙들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그녀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가 하룻밤을 지낼 스튜디오를 자신의 집 부근에 미리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스튜디오는 원래 한국 유학생의 자취방인데 그녀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사이 세를 내놓아 내가 머물 수 있도록 잡아둔 것이었다. 그녀는 방이 마음에 드세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할려면 내일 아침 쁘랭땅 백화점에 가보세요라고 알려주었다. “여자들은 명품 백을 사주면 좋아할 거라며 아내에게 줄 선물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달랑 책상과 침대가 고작이었고, 책꽂이에는 몇권의 책이 꽂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서 노트북을 꺼내 프라이부르크에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글을 쓰고 나니 눈도 침침하고 피곤이 몰려왔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문을 열어보니 그녀였다. 내가 배가 고플까봐 그녀가 뭔가를 가져온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차 한잔을 따라서 건네 주었다.

늦은 밤에 남녀 단둘 만이 있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하얀 손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손을 한번 잡아봐도 될까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입을 열려고 했으나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꿈속의 일이었다. 찻잔도 그녀도 없었다.

이런 꿈은 처음이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