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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7)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7)

 

꿈 속의 일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자 못내 아쉽고 공허했다. 그리고 꿈처럼 정말로 그녀가 문을 열고 나타날 것 같아 한참이나 귀를 세우고 기다렸으나 허망한 일이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의식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10년전, 그러니까 20007월 그녀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비뇽에 간 적이 있었다. 파리에서 니스행 떼제베(TGV·고속열차)를 타고 오랜 시간을 내달렸다.

아비뇽은 한때 교황청이 있었던 도시로 둘레가 성으로 둘러싸여 요새를 방불케 했다. 성 안에는 교황청 뿐 아니라 시청사와 옹기종기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때마침 세계연극제가 열리는 주간이어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성안이 온통 시장통처럼 북적거렸다. 우리는 그 인파에 휩쓸려 성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미로같은 골목길을 한참이나 지나니 시청 광장이 나오고 맞은편 언덕에 옛 교황청 건물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우리는 계단을 따라 교황청 정원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성벽 밑으로 론강이 푸른 속살을 드러내며 흐르고 있었다.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우리는 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신나게 감정을 발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검은 신부복을 입은 사제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불어로 무슨 말인가를 했는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순간 나는 신성한 금지구역을 침범한 것으로 생각해 잔뜩 주눅이 들었다. 우리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그 사제는 다시 한번 무슨 말인가를 우리에게 건넸다. 그의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