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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8)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8)

 

가까이 다가온 사제는 우리가 당황해 하는 기색을 보이자 다시 한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가 한 말은 불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take picture for you”. “사진을 찍어주겠다 는 말이었는데 불어 억앙이 심해 우리가 미처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건네주며 그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이어 교황청을 나와서 마을 골목길 투어에 나섰다.

골목길은 상가와 주택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미로처럼 구불구불 성안에 이어져 있었다. 상가는 카페테리아, 기념품가게, 옷가게 등 흔히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작은 연극 소극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길 군데군데 크고 작은 길거리 공연들이 펼쳐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연주하는 사람, 마술을 하거나 특이한 복장을 하고 판토마임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 거리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는 멈춰서서 판토마임 연기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 후레쉬가 번쩍 군중들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그런데 군중들 틈에서 누군가 뛰쳐나오더니 나에게 돈을 요구했다. 자신을 찍었다며 무작정 돈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는 판토마임 연기자도 아니고 그냥 관중의 한 사람일뿐이었는데 어이없게도 투정을 부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지폐 한 장을 꺼내주었다.

그렇게 골목길 투어를 하는 동안 어느새 노을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숙소를 찾으러 성안을 누볐으나 방 한칸을 구하지 못했다. 이미 예약이 완료돼 빈방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주민을 붙잡고 돈을 줄테니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기차역으로 돌아와 대합실 한 귀퉁이에서 슈트케이스에 기대어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