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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가을강에서

 

가을강에서

 

어느 암자에서 스쳐간 인연인 듯

그리운 님의 뒷모습이 이렇게 먹먹하게

가랑비처럼 가을강에 한땀 한땀 파고드는가

숨가쁘게 멀어진 계절의 뒷마당에는

수취인불명의 편지들이 코스모스로 펄럭이고

내가 밤세워 썼던 답장들은 낙엽이 되어 구르네

나는 강가 마로니에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잔물결이 전해주는 미완의 문장들을 해독하느라

붉은 노을 사이로 되돌아오는 새떼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퇴적된 모래톱에 쳐박혀 죽은 물고기들을 의심하네

낚시꾼들이 비에 젖은 채 물결따라 흘러가고

대신 떠오르는 건 울긋불긋한 수초들

내 마음 강물에 비추이면 몽실몽실 피어나는 옛 추억

그리운 것들이 흐렁흐렁 모여드는 가을 황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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