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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대선 D-15, 호남표심 읽기 

대선 D-15, 호남표심 읽기 


 

입력날짜 : 2007. 12.04. 00:00

 박준수 부국장대우 경제부장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유난히 막혀 어디서 접촉사고라도 났나 생각했더니 청소차가 도로 한켠을 차지하고 은행나뭇잎을 쓸어담는 중이었다. 삭막한 도시에 가을의 추억을 노랗게 물들였던 은행잎들이 쓰레기 포대에 담겨 차에 실리는 것을 보고 가을의 잔치도 벌써 끝나는가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낙엽들이 말끔히 치워진 거리에는 오후들어 가랑비까지 뿌리더니 하늘마저 회색빛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벌거벗은 가로수 사이엔 두팔을 벌린채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17대 대선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대선 D-15일. 지금 호남사람들의 표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가장 잘 대변한 표현은 진보학계의 거목인 최장집 고려대교수의 최근 발언이 아닐까 싶다. 최교수는 지난달 23일 한 토론회에서 "2007년 대선과정의 특징은 투표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지난하고 고통스럽다"며 "이 점에서 최악의 대선이며 현재 보통 투표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5년전 바로 이 무렵 호남사람들에게 대선은 긴박한 폭풍전야였다. 그리고 선거결과는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리고 열광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줄 것이란 믿음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호남사람들은 최장집교수가 촌평한대로 '최악의 대선'을 맞고 있다. 이를 호남인의 마음에 투영시켜 보면 아마 이런 심정일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이 아무개는 '경제 대통령'이란 이미지와 함께 경제를 살릴 능력을 가진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정서적으로 친화력이 떨어진다. 통합신당 정 아무개는 친화력은 있지만 지지율이 오르고 있지않은 가운데 그의 정책, 비전은 실체적 대안이나 일관성이 없이 '레토릭'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무소속 이 아무개는 그의 냉전 반공주의가 시대변화에 대응할 수 있느냐 하는 이념적 문제와 더불어 과거 '차떼기 정당' '국세청으로부터의 선거자금 동원'을 주도한 정당의 책임자로서, 그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민노당 권 아무개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중심에 놓고 노동자, 저소득 소외계층을 대표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선거혁명을 일으킨 광주의 상징성이 희석된데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번 대선이 호남사람들에게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같다. 예전 같으면 특정정당 텃밭으로서 특정당 후보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였으나 이제는 그같은 몰표 중압감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게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이러한 경향은 각 정당행사장에 몰린 청중수에서 읽혀질 뿐 아니라 수차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명확히 확인되고 있어 정치지형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러한 지각변동의 중심에는 '실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등소평이 설파한 '흑묘백묘'론의 전략이 유권자들 사이에 교감폭을 넓혀가는 양상이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것도 사실상 전략적 선택이었듯이 이번에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겠다는 심리가 막판 표심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도 호남사람들의 표심은 부동층에 머물러 있다. 예전같은 폭발력은 없을지 몰라도 저변에는 휘발성 강한 '뜨거움'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라도 복원될 수 있는 깃발의 대오가 꿈틀대고 있다.
 앞으로 15일후면 새 대통령 당선자가 선출될 것이다. 누가 이번 대선의 승자가 되든 '若無湖南 是無國家'의 뜻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