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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올 겨울 '지방'이 더 춥다

올 겨울 '지방'이 더 춥다


 

입력날짜 : 2008. 11.18. 00:00

 

 
 박준수 부국장 겸 경제부장
 
 지금, 남도의 들녘은 만추(晩秋)의 서정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농민들의 땀방울과 자연이 빚어낸 풍성한 결실로 곡창이 그득하다. 하지만, 정작 이를 완상하고 마음을 뉘어야할 남도인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올해는 날씨가 순하고 태풍도 오지않아 전남의 쌀 수확량이 4년만에 90만톤을 넘는 대풍작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비료와 농약 등 각종 농자재 가격이 많이 올랐고, 특히 쌀수입량이 해마다 늘면서 쌀값 하락이 예상돼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크다. 또한 축산농가 역시 연초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으로 입식농가가 줄고 한우가격이 떨어져 울상을 짓고 있다. 과수농가와 채소농가도 올해 풍작을 거뒀지만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추석때 과잉생산으로 대목을 놓친 배 뿐 아니라 감나무 등 과수농가와 배추농가도 품삯과 농자재는 오른 반면 가격은 크게 하락해 남는 것이라곤 빚더미뿐이라고 한다.
 판로가 막히고 제값을 못받으니 차라리 땅에 묻는게 낮다며 애써 가꾼 농산물을 피울음을 삼키며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가도 있다. 지난 11일이 제13회 '농민의 날'이었지만 흥겨운 축제마당은 고사하고 농정에 대한 분노에 찬 집회와 시위로 대신했다.
 도시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정부 출범때부터 예견된 상황이긴 하지만, 수도권규제 완화는 서둘러 추진하는 반면 지방균형발전정책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쳐놓고 있어 지방경제는 벌써 겨울 한복판에 와있는 느낌이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전이되면서 90%이상이 중소기업인 광주·전남지역 제조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부분이 대기업 협력업체인 이들 중소기업들은 요즘 3중고를 겪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예상과 달리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지역내 키코(KIKO) 가입업체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또 각종 수입원자재 가격이 40% 안팎으로 치솟았지만 대기업들이 국제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납품단가를 인상해주지않아 적자에 허덕이거나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업체가 하남공단을 중심으로 속출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금융권이 BIS 기준율 확보와 리스크 관리(재무건전성 개선)를 이유로 중소기업에 대한 돈줄을 바짝 조이면서 대출이 어려워져 극심한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C&중공업 등 지역내 몇몇 대기업들마저 고전하는 바람에 이들 기업에 납품한 중소기업들이 제때 대금을 못받거나 어음을 주는 바람에 죽을맛이다.
 이는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가 조사한 내용과도 그대로 일치한다.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최근의 광주전남지역경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광주·전남지역 경제는 제조업생산이 부진하고 소비와 투자가 저조한 가운데 수출증가세도 둔화되는 등 경기둔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기간 제조업생산은 내수부진 및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경기 위축 등의 영향으로 전년동기 대비 광주 -4.2%, 전남 8.5%로 부진했으며, 전국 권역별 비교에 있어서 제주(1.7%)를 제외하곤 광주·전라권(2.9%)이 가장 저조했다. 특히 그동안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해온 수출도 최근들어 중국 등 신흥시장국의 수입수요 감소로 증가세가 약화되고 있다. 광주는 자동차 수출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가전도 10월 들어 우크라이나, 남미, 동남아 등 신흥시장국의 경기침체로 증가세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한은 광주전남본부 조사담당자는 "4·4분기 경기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 겨울 지역경제에 닥쳐올 추위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와 종부세 감세 등을 통해 수도권 살리기에는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지방은 추위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종부세 감세로 당장에 지자체의 부동산교부세가 대폭 줄어들게돼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더욱 쪼그라들 것이 걱정된다. 이래저래 이명박정부의 지방 챙기기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정권도 국민도 모두 불행해진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