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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만장너머 열린 6월이 궁금하다

만장너머 열린 6월이 궁금하다/박준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입력날짜 : 2009. 06.02. 00:00

 

  
 충격과 비통, 그리고 만장으로 뒤덮였던 5월의 강을 건너 6월의 하늘이 열렸다. 그러나 국민들의 가슴속에는 휘날리는 만장처럼 5월의 끝자락이 아직도 아슴아슴 어른거린다. 온 산하가 눈물과 탄식이 마를날이 없었던 5월, 광주는 너무나 허망하고 깊은 상실감에 젖어들었다. 무등산도 80년 5월 그날처럼 숙연한 그림자로 선 채 산빛을 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는 한 조각 자연이 되고자 하는 그만의 유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형언키 어려운 화두를 남겨놓았다. 그래서 장례기간중 봉하마을에만 100만명의 추모행렬이 밤낮으로 이어졌고 전국적으로 500만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죽음으로써 국민들 가슴속에 새롭게 부활했고 그의 못다이룬 정치적 신념을 다시 현실속에 추동시킨 것이다.
 그는 비록 한줌 재로 해탈했지만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국민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밝히는 등불로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5월은 역사의 뒷편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고 뜨거운 6월의 태양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지난 한 세기 가까운 우리 민족사의 6월은 참으로 곡절이 많았다. 1926년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의 장례식 날 일어난 '6.10 만세사건'으로 3.1운동의 불을 다시 지폈고, 1950년 6월은 2차 세계대전보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동족상잔의 '6.25사변'이 일어났다. 1964년엔 일본과의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시위로 위수령과 휴교령이 내려진 이른바 '6.3사태'가 일어났고, 1969년 6월엔 '3선 개헌 반대' 데모가 거세게 일어났었다. 1987년엔 6월 10일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반대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이른바 '6월 항쟁'이 일어나 마침내 6.27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2000년엔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었고, 작년 6월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온 나라를 흔들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6월도 어느 해 못지않게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국민들의 가슴앓이가 아직 가라않지 않았고 정치권도 6월 국회에서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을 놓고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발사와 이에 맞선 남한의 강경대응으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6.10 항쟁 22주년과 6.13 여중생 압사사건 7주년,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을 맞아 대규모 장외집회를 계획하고 있고, 노동계의 '하투'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집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정치권의 최대 관심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술렁였던 민심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지에 쏠리고 있다.
 숨죽였던 민심이 각종 민감한 정치사회 일정과 맞물려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될 우려 때문이다. 이와관련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지난 31일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빈소와 분향소를 찾은 것은 한마디로 의미심장한 일"이라며 "바로 그 점이 정치인 '노무현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전 의원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누구에게나 스스럼없는 대상, 때로는 나와 같은 처지, 같은 고통과 억울함을 겪었을 거라는 '동질감'을 주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의 힘이었다"며 "아마도 그 정치적 효과나 반향도 꽤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그런 특별하고 독특한 정서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한나라당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전 의원은 또 "과거를 통해 어떤 미래를 만드느냐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됐다"며 "달빛이 비춘 신화로 기억한다면 그는 노사모의 짱으로만 머무르겠지만 찬란한 햇빛아래 기억한다면 역사 속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오늘의 문맥을 잘 읽어낸 독법이다. 노 전대통령이 평생을 던져 노력해온 정치개혁, 지역주의 극복, 국가균형발전, 남북 평화번영의 과제를 한줌의 재로 묻어버리기에는 국민들의 갈망이 너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