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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무등산 옛길에서 주운 생각

무등산 옛길에서 주운 생각 / 박준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입력날짜 : 2009. 07.07. 00:00

 

 
 
 무등산 옛길이 복원돼 일반에게 개방된 후 이 길을 다녀온 등반객들의 입소문이 하도 걸쭉해 지난 주말 지인과 더불어 그곳을 다녀왔다. 날씨도 화창하고 더구나 며칠전 비가 한차례 내린 터라 산행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집에서 차를 타고 신양파크 입구 휴게소에 파킹해두고 전망대에서부터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옛길의 자취를 더듬어보았다.
 한사람이 넉넉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오솔길이 하늘을 가린 나무숲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더니 원효사 입구까지 내내 이어졌다.
 길이 순하면서 적당히 깔린 실루엣이 운치를 자아내 대화와 사색을 즐기기에 더할나위 없는 코스였다.
 지금껏 무등산 등산은 증심사 입구를 거쳐 중봉에 오르거나 산장에서 장불재-규봉암-꼬막재-무등산장을 일주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번에 새로 열린 옛길을 걸으면서 무등산의 또 다른 진면목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이렇듯 산은 어느 길로 오르느냐, 또는 어느 방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같다. 그래서 당송 팔대가에 꼽히는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 소동파(1036-1101)는 '題西林寺壁'(서림사 벽에 붙여)이라는 시에서 여산의 모습을 이렇게 풀어냈다.
 "옆에서 보니 고개인데 다른 쪽에서 보니 봉우리이네/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저마다 같지 않구나/ 여산의 진면목(眞面目)을 알 수 없으니/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을 뿐이네"
 바로 이 시의 '진면목'이란 표현이 명구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즐겨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자사전에는 너무도 깊고 그윽하여 그 진면목(眞面目)을 알 수 없음이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다.
 요즘 시중에는 벌써부터 내년 6.2지방선거와 관련한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지방선거일이 10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출마를 준비하는 공직자들의 명퇴가 잇따르고, 현직 단체장과 의원들도 선거모드로 전환한 느낌이다.
 이와함께 민주당 공천 구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 그리고 공천경쟁에서 맞붙게될 현직단체장과 예비후보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갖가지 가십(gossip)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선거철이면 가장 반향이 큰 기사가 여론조사 결과 보도이다. 전체 유권자의 마음을 수치로 읽어내는 여론조사야말로 선거판을 뒤흔드는 '태풍의 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희비가 교차하고 유권자들도 뜨거운 관심속에 누구에게 한표를 행사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요즘에는 여론조사 기법이 발달돼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사례가 거의 없지만 초창기엔 빗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라는 잡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무려 240만명에 이르는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공화당 후보인 던랜든이 민주당의 루즈벨트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 선거 결과는 이와 반대로 루즈벨트의 압승으로 끝났다. 240만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가 왜 이렇게 빗나간 것일까. 문제는 표본선정에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잡지는 전화번호부와 자동차 등록부를 대상으로 해서 임의로 조사대상을 선택했는데 당시 미국에서 전화와 자동차를 소유할 정도면 상당한 부유층에 속했다. 그러니까 이 여론조사 결과는 부유층의 여론만을 대변한 셈이고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는 서민층의 지지를 받은 루즈벨트가 당선된 것이다.
 최근 몇몇 지역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싸고 지역정가에서 뒷얘기가 무성한 것같다. 선거일이 아직 300여일이나 남아 있으니 이번 결과를 가지고 민심의 풍향을 예단할 수 없지만 빈총도 안맞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여론조사가 과학적 조사방법에 기초한 것이어서 예측력이 높다고는 하나 '민심의 숲'을 어찌 수치만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변화무쌍한 여산의 한 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입지자들은 민심의 진면목을 정확히 통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등산 옛길을 걸으며 지역민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