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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부엉이 바위'에 올라보니

'부엉이 바위'에 올라보니 / 박준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입력날짜 : 2009. 08.11. 00:00

 

 박준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지난주 휴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인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그동안 TV 화면로만 보았는데 경남 양산 친척집에 방문한 참에 가족과 함께 들렀다.
 노 전대통령이 서거한 지 두달이 지난 봉하마을은 여전히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따뜻한 위로에 감사하다'는 유족의 인사말이 적힌 현수막이 마음을 흔들었다.
 하루 3천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누군가 귀띔해주었다. 서거직후의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잠겼을 봉하마을은 점차 예전의 농촌모습을 되찾으면서도 역사의 현장으로 새롭게 일어서는 듯했다.
 주인을 잃은 사저는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된 채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마을 앞에 펼쳐진 논과 저수지가 노 전대통령과 오버랩되며 생전의 모습들이 활동사진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봉화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목에, 사저에서 15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가 있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라는 유언 그대로, 노 전대통령은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녹슨 철판 덮개위에 거북등같은 비석이 세워진 무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며 엎드려 명복을 빌어주었다.
 여느 시골마을 뒷동산처럼 야트막한 봉화산은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왼편은 곧장 부엉이바위가 나타나고, 오른편은 정토암으로 가는 길이다. 외줄기 산길에 사람의 행렬이 이어지다보니 멀리서 보면 커다란 염색천이 산중턱에 걸쳐있는 듯 보인다. 등산로를 따라 드리워진 줄에 매달린 노란매듭에는 노 전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헌사가 가득 적혀 있었다.
 부엉이바위 밑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투신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윽고 부엉이바위에 올라보니 마을풍경이 아득히 한눈에 들어왔다. 사저와 복원중인 생가터, 마을가옥, 주차장, 논과 들녘 등 모든 게 평화로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노 전대통령이 왜 몸을 던져야만 했는가'에 대해 한마디씩 해석을 풀어놓으며 산아래를 굽어본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이어 발길을 정토암으로 돌렸다. 소박한 산중 절간은 여느 암자와 마찬가지로 아담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웅전에 오르자 노 전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방명록에 다시 한번 노 전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한 시간남짓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보니 때마침 묘앞에서 노사모회장이었던 영화배우 명계남씨가 상복차림으로 참배객을 맞으며 노 전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렇듯 봉하마을은 2009년 역사의 현장으로 탈바꿈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갈까 궁금해졌다. 물론 노전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더러는 호기심에 끌려 찾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느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은 아마도 노 전대통령이 생전에 구현하고자 했던 '사람사는 세상'의 꿈 한 조각을 품고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요즘, 서민들은 예전보다 살기가 팍팍해졌다고 아우성이다.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서민과 중소상인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지역간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둘러싸고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고, 남북관계는 언제나 긴장이 풀릴지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올라 '사람사는 세상'이 오기를 빌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각성하기 바란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고1 큰 딸이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노 대통령이 서거한 날 교실안으로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