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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영산강이 혁신도시를 만날 때

영산강이 혁신도시를 만날 때 / 박준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입력날짜 : 2009. 09.15. 00:00

 

  
 성큼 가을이 왔다. 거리에 나서면 청자빛 하늘이 눈부시게 걸쳐있고 그 아래 무등산이 악수라도 건넬 듯 가까이 다가와 있다.
 벌써 금남로 은행나무 가로수는 툭툭 은행알을 떨어트리며 도시를 가을로 인도하고 있다.
 어느 시인은 가을을 '만남의 계절'이라고 읊었는가 하면, 어느 대중가수는 '잊혀진 계절'로 노래한다.
 이런 날이면 시 한줄이 가슴에 꽂힌다. 그중에 황동규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가 떠오른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이하생략)"
 문학평론가들은 이 시에 담긴 비유적 의미를 "굴러가야할 바퀴처럼 삶의 세계도 당연히 굴러가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바퀴를 매달고 구르고 있다. 정부, 정치권, 기업, NGO도, 심지어 은행나무도 제 열매를 굴리며 존재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MB정부는 지난 3일 '친서민·중도실용'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기위해 새로운 '바퀴'를 갈아끼웠다. 집권 2기 내각의 총리 후보자로 경제학자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내정한 것이다.
 그런데 정 후보자의 내정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술렁거리고 있다. 정 후보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제의받거나 정계입문을 권유받았을 정도로 진보·개혁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왔다. 특히 지난 17대 대선때는 구여권의 대선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MB노믹스'의 핵심인 4대강 사업과 감세정책에 대해서 청와대와 다른 시각을 견지해왔기에 해석이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도무지 풀리지않는 퍼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퍼즐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꺼풀씩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정 후보자는 청와대 개각 발표 직후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서울대 교수회의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원안대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놓고 충청권에서는 정 후보자를 '세종시'용이라고 깎아내리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운찬 교수가 내정발표 직전 청와대로부터 4대강과 행정도시 문제에 대해 '사전면접'을 봤을 것으로 가정해볼 때 입각후 그의 정치적 행보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함께 최근 퍼즐을 풀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서가 나타났다. 나주출신 민주당 최인기 의원이 총리직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4대강과 행정도시 문제에 대해 최 의원이 이상할 정도로 MB와 코드가 맞는다"고 지적한다.
 '심대평→최인기→정운찬'으로 이어진 청와대의 행마를 추적해볼 때 이번 총리인선을 통해 참여정부가 이룩한 균형발전의 터전을 백지화하고 그 위에 MB정부의 실용 청사진을 그리겠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MB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4대강사업은 이달 말부터 총 76개 공구에서 발주금액 5조7천850억원에 달하는 공사발주가 시작된다. 반면, 혁신도시 등 참여정부의 사업들은 도무지 굴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는 2012년말 준공을 목표로 하는 나주 혁신도시는 현재까지 단 한개 기관도 부지매입을 하지 않은채 정부눈치만 살피고 있다. 싯구처럼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공교롭게도 나주는 신구정권의 대형프로젝트가 병존하는 접점지대로 자리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가 건설되고 있고, MB정부의 영산강 친환경하천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민들은 이 가을이 신구정권간 '잊혀진 계절'이 아니라 '만남의 계절'이 되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와 영산강이라는 두개의 바퀴가 서로 어우러져 화합과 통합의 길로 힘차게 굴러가기를 소망한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혁신도시와 영산강이 함께 상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