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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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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시절 이야기(5) -광주비행장에 갔던 일 (5) 광주비행장에 갔던 일 6학년 2학기 겨울방학 때였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던 중 누군가 비행기를 보러 송정리 비행장에 가자고 제안했다. 함께 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좋아, 비행기 보러 가자”며 하나같이 들뜬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대여섯명이 뭉쳐 무작정 송정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동네를 출발해 양동초등학교 앞을 지나 돌고개를 넘어 머나먼 행군을 시작했다. 당시는 시내에만 차들이 붐볐고 시내를 벗어나면 시골길처럼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한산했다. 또한 시내를 벗어나면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고 도로 역시 아스팔트 포장길이 아닌 자갈길이어서 우리는 도로 위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간간히 차들이 오갔지만 도로를 걷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수다를 떨면서 가니까 그렇게 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4) 양동복개상가의 추억 (4) 양동복개상가의 추억 양동시장 주변 광주천에는 불법으로 들어선 목조상가들이 난립해 있었다. 하천부지에 기둥을 세우고 도로와 맞닿게 일렬로 세워진 상가건물들은 광주일고 방향에서 건물의 뒤편을 바라보면 2층 구조로 돼 있어 외관상 독특한 풍경을 이루었다. 하천과 인접한 1층 공간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도로와 접한 2층은 상가로 사용되었다. 이들 상가는 옷가게와 가구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구점인 경우 가게 한켠에서 직접 가구를 제작하는 집도 있는데 두레박으로 광주천 물을 길어서 사포질에 사용하였다. 이들 목조상가는 일종의 무허가 판자집이지만 권리금이 꽤 비싸게 거래되었다. 나중에 막차로 상가를 매입한 사람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주시는 광주천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목조상가를 정..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3)- 여름 방학때 극락강에서 아찔한 순간 (3) 여름 방학때 극락강에서 아찔한 순간 신나는 방학이 시작되면 우리는 공부는 뒤로 한 채 일탈을 시도했다. 구슬치기나 딱지 따먹기와 같은 게임에 물릴 때 쯤 누군가가 불쑥 기발한 제안을 내놓는다. 6학년 여름방학이었다. 함께 놀던 동네 한두살 위 형이 갑자기 “극락강에 수영하러 가자”고 충동질을 했다. 그말이 나오자마자 아이들은 그 형을 따라서 극락강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 대열에 함께 동참했다. 한참을 걸어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극락강 강가에 도착했다. 정확한 지리적 위치는 잘 모르겠고 가까이에 산이 있었다. 아마도 산동교 부근이 아니었나 싶다. 형과 아이들과 나는 강가 자갈밭을 지나서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아이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
초등학교 시절(2)-공설운동장에서의 학교대항전 공설운동장에서의 학교대항전 이번에는 공설운동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가을이 되면 광주시내 초등학교들이 공설운동장에 모여서 학교대항 단체전 경기를 벌였다. 경기종목은 축구 등 구기종목과 달리기와 계주 등 육상경기를 망라했다. 각 학교는 스텐드에 자리를 잡고앉아 ‘필승’이란 커다란 글씨가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응원을 벌였다. 특히 학교들은 카드섹션을 하면서 응원전을 펼쳤는데, 우리는 카드섹션을 하기 위해 거의 한달 동안 학교에서 맹연습을 했다. 카드섹션은 일종의 모자이크로 여러 장의 카드를 조합해서 글자나 그림을 만들어서 표현하는 응원방식인데 멀리서 보면 전광판처럼 역동적인 시각적 효과를 준다. 우리는 10여장의 카드를 지니고 있다가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번호에 맞춰 해당되는 색깔의 카드를 얼굴..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1)옛 집의 기억 (1)옛 집의 기억 나는 1970년 4학년초에 광산군 B 국민학교에서 광주 Y국민학교로 전학을 왔다. 우리 부모님은 과수원을 경작하셨는데 임대로 살던 곳이라 계약기간이 끝나 어쩔 수 없이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과수원은 모 중학교 소유로 원래는 일본인 소유였는데 해방과 더불어 적산이 된 과수원을 주민들이 여론을 형성해 교육용 재산으로 귀속시켰다. 우리 가족이 광주로 이사올 때 가진 돈은 전년도 가을에 감을 수확해 판돈이 전부였다. 그 돈은 상하방 전세를 얻고 나머지는 고작 한 두달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정도였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에다 형제가 4남1녀로 대가족이었는데, 방을 구할 때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집주인들이 꺼려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겨우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집 주인의 ..
고향집 과수원이 문학의 탯자리 ●박준수-나의 문청시절 이야기<1> 고향집 과수원이 문학의 탯자리 사계절 변화 통해 자연의 언어 배워 외국 번역시집 읽으며 몽환적 시세계 체험 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문청(文靑)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문학의 탯자리는 유년시절 고향집이 아닌가 싶다. 나는 광주 남구 서동..
장학사와 배 나의 유년시절 장학사와 배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학교에 장학사 선생님이 오신다고 학교가 떠들썩하였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과일 전시회를 한다며 집이 과수원하는 학생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우리집이 감나무 과수..
무등산 장원봉에서 맞은 새해 무등산 장원봉에서 맞은 새해 2015년 청양의 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는 설레임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것 같다. 시간이란 연속적이어서 해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련만 새옷을 갈아입은듯 그 느낌이 사뭇 새롭다. 새해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소망을 빈다. 그리고 새해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