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몽골 취재기

몽골 취재기

몽골 취재기

 

거친 생명의 땅, 대초원의 숨결을 따라서

징기스칸의 후예 핏속에 흐르는 야생의 삶이

재정난속 경제개발 꿈틀, 한국여행자 급증

 

필자는 지난 86~934일 일정으로 몽골 취재를 다녀왔다. 몽골은 그동안 한국과 교류가 많지 않았던 터라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나라이지만 최근 한일간 갈등 영향으로 몽골을 찾는 한국 여행자가 급증하면서 가까운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무안공항에서 전세기가 취항하면서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손쉽게 몽골여행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거친 생명의 땅, 끝없는 대초원에서 징기스칸의 피가 흐르는 몽골의 역사와 문명을 만나보았다.

 

지구온난화로 비오는 날 많아

 

 

                사진=몽골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

 

 

6일 오후 무안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3시간 15분의 비행 끝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징기스칸공항에 착륙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공항을 나와 시내로 들어가는데 도로 정체가 심했다. 알고 보니 전날 내린 비로 도로가 침수되면서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몽골은 연간 강수량이 200~250로 비 오는 날이 적은 나라인데 최근 몇 년전부터 여름철에 비가 오는 날이 많아졌다아마도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몽골은 국토면적으로는 한반도의 7배이지만 인구는 30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50만명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다. 환율은 2.21 비율로 한국 원화가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국가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도로, 상하수도 같은 도시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비가 오면 도로사정이 양호하지 못하다.

첫 방문지는 울란바타르 시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였다. 수백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높다란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몽골은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를 도와 독일·일본과 싸웠다. 탑 주변 원형 벽화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자이크 구성해 이해를 돕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가지는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이 빌딩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외곽에 빼곡이 자리한 게르 형태의 서민주택과 화력발전소에서 쉼없이 내뿜는 하얀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전망대가 등지고 있는 산등성이에는 약간의 침수림과 초원이 어우러져 알프스 산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산자락에는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몇몇 건물은 공사장 진행중이다. 몽골은 재정난을 겪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 등 민간자본을 중심으로 아파트와 호텔건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몽골의 항일투사 이태준선생

 

 

                  사진=애국지사 이태준선생 묘비

 

전망대 관람을 마치고 인근에 위치한 항일독립투사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을 찾았다. 이 공원은 20017월 한국정부가 이태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으로 기념비와 묘지, 기념관, 팔각정 쉼터로 꾸며져 있다. 이 공원은 한국정부가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이태준 선생의 애국활동이 사진과 함께 잘 그려져 있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 열사는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몽골로 이주해 각종 질병 치료에 헌신하는 한편 몽골국왕 주치의로도 활동했다. 또 의열단원으로서 일제 타도를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1921년 일본군과 연결된 백계 러시아군에 의해 울란바타르에서 사살되었다.

한일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태준 선생의 애국정신이 더욱 뜨겁게 가슴 에 와 닿았다.

이어 발길을 돌려 몽골 마지막 황제 복드칸이 20년간 살았던 복드칸 겨울궁전을 찾았다. 종교와 정치의 수장으로서 군림한 복드칸의 궁전은 사원과 궁전이 한 공간에 배치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현재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곳은 개선문, 고궁, 사찰로 이뤄져 있으며 불상과 탱화를 비롯 세계의 왕으로부터 받은 선물, 복드칸이 수집한 박제동물, 그가 남긴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실제로 왕과 왕비가 생활했던 식당과 침실 등 당시의 궁전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튿날은 울란바타르로부터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차창밖으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초원에는 말과 소, 염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목장들은 철조망이나 담장으로 경계를 이룬다. 간혹 도로에는 가축들이 지나는 차량에도 아랑곳없이 길을 건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길은 대체로 포장돼 있으나 군데군데 유실된 곳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한다. 더러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초원 언덕에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하얀 비석의 행렬이 망자들이 잠든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몽골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은 매장인데 최근들어 화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불교국가답게 공동묘지에 커다란 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테를지국립공원에 다다르니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여행에 지친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테를지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기암괴석으로는 거북이 바위와 오형제바위가 눈길을 끈다. 가이드는 이러한 다양한 기암괴석을 가리켜 신의 놀이터였다고 설명했다. 신이 바위로 형상을 만들며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재치있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하긴 신이 만물을 창조했으니 이 또한 신의 작품임에 틀림없는 이야기이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가까이에 있는 아리야발 사원에 올랐다. 이 사원은 부처가 타고 다녔다고 전하는 코끼리를 형상화한 사원으로 새벽사원이라 불린다.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숫자인 108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이 계단이 코끼리의 코를 상징하고 사원이 코끼리의 머리를 상징한다.

 

신의 놀이터기암괴석

    

 

 

                  사진=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

 

사원에 오르는 가파른 언덕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그리고 길가에는 불경의 구절을 담은 표지판을 줄줄이 세워놓아 오르면서 한구절씩 마음에 새기도록 하고 있다.

아리야발 사원은 러시아 군정기 때 불교탄압으로 많은 사찰이 사라져 몽골에 몇 남지 않은 사원중 하나로 1988년에 복원되었다.

사원에서 내려와 본격적으로 유목민 생활체험에 나섰다. 승마체험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10대 소년 마부가 여행자가 탄 2마리 말을 이끌고 1시간 가량 초원을 순례하는데 말 위에서 바라보는 초원의 풍경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내가 몽골인이 된 것처럼, 혹은 미국 카우보이가 된 것처럼 이국적인 기분에 절로 마음이 들뜬다. 몽골인들은 태어나면서 말의 젖을 먹고 자라고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말을 타고 한 평생을 살아가니 호전적인 기질이 몸에 배일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에서 내려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게르를 구경했다. 게르 내부는 입구 정면에 신을 모시는 제단이 있고 주변으로 침대와 가재도구가 놓여 있다. 그리고 가운데 화로가 놓여 있어 난방과 취사를 할 수 있다. 조금 있으니 말 젖으로 만든 술인 마유주와 요구르트, 치즈 등 몽골 전통음식이 나왔다. 대체로 시금털털하고 담백한 맛이 느껴졌다.

승마체험을 마치고 초원생활을 원시 그대로 맛볼 수 있는 게르 캠프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잠시 징기스칸 기마상을 관람하였다. 2010년 완공된 기마상은 그의 고향인 전진불독(Tsonjin Boldog) 초원지역에 세워졌다. 지상으로부터 높이는 50m이고, 그중 건물높이는 10m, 조각상의 높이는 40m에 달하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징기스칸(1162~1227)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정복한 몽골제국의 영웅이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출신보다는 능력에 따라 대우하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강한 군대를 이끌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사,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초원의 새벽은 몽환적 풍경

    

 

 

 

                  사진=징기스칸 기마상

 

징기스칸 기마상 맞은 편에는 어머니 상을 세워 고향에 돌아오는 징기스칸을 맞이하는 스토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어 초원의 밤을 지내기 위해 게르 캠프에 여장을 풀었다. 게프 캠프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숙소로 산비탈에 여러 채가 집단으로 모여 있다. 샤워와 식사는 별도의 건물에서 하고 잠만 자는 공간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다. 8월은 백야 현상으로 10시까지 태양빛이 남아 있으므로 보통 자정이 되어서야 뚜렷한 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이면 게르 바깥날씨는 초겨울 날씨처럼 차가운 기운이 엄습한다. 그래서 두터운 파커를 입고 별을 기다려야 한다. 이윽고 자정이 되니 하늘이 온통 별천지이다. 북두칠성을 비롯 온갖 별자리들이 제각각 촉수를 높이고 지상을 내려다 본다. 여행자들은 별을 보면서 저마다의 상념에 빠져든다. 유년 시절 고향마을의 별을 생각하거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유성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을 것이다.

별구경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난로에 불을 피우기는 했으나 장작불이 사그라들어 체온으로 아침까지 견뎌야 한다. 바람소리와 추위에 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새벽이 되어 게르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희미한 미명이 남아 있어 초원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저 멀리 톨강이 하얀 속살을 비추며 흐르고 있다. 안개와 햇살, 갈기를 세운 차가운 바람결이 뒤섞여 새콤달콤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초원의 새벽을 맞이하는 설레임일지도 모르겠다. 한 여인이 철조망 사이로 내려가 내가 바라보는 풍경안으로 들어온다.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고독을 환기시키며 마음을 짓누른다. 여행은 그렇게 혼자서 경계를 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지는 쓸쓸함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러 있다.

 

몽골국립박물관

 

1924년에 건립된 몽골국립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징기스칸, 복드칸 시대, 그리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시대에 이르는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6만 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층에는 약 80만 년 전부터 몽골에 살았던 고인류가 남긴 석기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생활도구토기장신구무기 등 선사시대 다양한 유물과 몽골의 조상인 흉노, 그 후 등장한 돌궐위구르거란 시대의 역사와 문화, 생활상 등 고대유목국가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20여개 민족별 전통의상과 장신구, 보기드문 화려한 몽골여성의 머리장식과 옷장식 등을 감상할 수 있다. 3층에는 징기스칸이 건국한 이흐몽골국 시대 귀중하고 화려한 자료들, 수도 하르호롬에서 출토된 유물, 각종 무기와 외교문서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유목민들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목축수렵에 관련된 도구와 농기구, 그리고 이동식 가옥인 게르를 볼 수 있다. 이어 17~20세기 청나라 지배 당시 사용하던 고문도구와 갑옷무기 등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복드칸 시대 유물과 1921~1990년 사회주의시대, 1990년 이후 민주주의시대 사진과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