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설산 아래 붉은 꽃망울 봄기운이
물씬 입력날짜 : 2014. 02.24. 19:42
18일 오후 무안공항을 이륙한 스타플라이어(전세기)가 기타큐슈 공항에 사뿐히 안착하자 뿌옇게 회색빛을 머금은 하늘 아래 하얀 눈을 맞은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주일만 지나면 본격적으로 벚꽃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낼 터인데 자연의 겉모습은 여전히 겨울왕국이다. 첫날 일정은 기타큐슈 시내 리버워크 쇼핑몰에서 ‘맛보기’ 관광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튿날은 큐슈 제1의 도시 후쿠오카로 이동해 유명사찰과 유적지를 답사했다.
먼저 큐슈 시내 인근에 자리한 동양 최대 와불상(臥佛像)으로 유명한 남장원엘 들렀다. 절 입구에는 달마대사상이 관광객을 맞이하는데 배꼽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풍습 때문에 반쯤 드러난 배주위가 반질거릴 정도로 닳아있다. 이곳 와불상은 화순 운주사 와불과 달리 청동으로 주조되었으며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주지스님이 부처님 발바닥을 만진 후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알려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행운을 비는 곳이다. 큐슈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1천300년 역사의 도시 다자이후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왕인박사 후손으로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천만궁이 있다. 입구 주변에는 일본 찹쌀떡을 즉석에서 구워서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입시생을 둔 학부모라면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며 떡을 사가기도 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잔잔한 호수가 주변의 정원과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매화 나뭇가지에는 벌써 희고 붉은 꽃망울이 맺혀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천만궁을 나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구마모토 성에 도착했다. 구마모토성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의 선봉에 섰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세운 성이다. 기요마사가 50세에 병으로 죽은 후 3남 다다히로가 가문을 잇게 되지만 북큐슈출신 호소가와 가문에게 넘어간다. 이 성은 특히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호소가와 가문으로부터 손님의 대우를 받으면서 세계 3대 병서로 유명한 ‘오륜서’를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구마모토성은 500년 역사를 거치며 수차례 난을 겪었는데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1877년 발생한 세이난(西南) 전쟁이다. 메이지유신 때 유신웅번이던 사쓰마가 신정부에 대항해 일으킨 일본 최후의 내전으로, 발발 3일전 원인모를 화재로 천수각 등 주요 건물이 소실된 것이다. 현재의 천수각은 1960년에 외관을 복원한 것으로 내부 박물관에는 가토가문, 호소가와 가문, 세이난 전쟁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성주가 머무는 어전(御殿)에는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는 지하통로와 장벽화가 볼거리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 때문에 구마모토성은 메이지유신의 혁명과정을 다룬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소재가 됐다. 구마모토성은 관광객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무사복장을 한 청년들이 무사행동을 재현하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사흘째는 활화산과 온천지 관광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마모토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활화산과 초목이 어우러진 아소산이 있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복식칼데라 분화구와 에보시타케산의 광활한 대초원이 볼거리이다. 저녁은 아소산 계곡에 위치한 아소팜빌리지에서 머물렀는데 숙소가 에스키모들의 얼음집 모양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33㎡(10평) 가량의 돔형 주택 300여개가 단지를 형성하고 있어 그 자체가 특이한 모습을 연출한다. 아소계곡에서 분화구가 있는 곳까지는 차로 20여분 걸리지만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진입이 통제된다. 다행히 통행이 가능해 화구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화산연기가 치솟아 화산박물관에서 견학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화산박물관은 약 30만년 전 화산활동 개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화산활동과 지형지질, 동식물, 역사민속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화구 주변에 설치된 2대의 카메라로 내부상태를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아소산에서 내려와 NHK가 선정한 가장 일본적인 마을, 유후인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온천관광지의 대명사인 벳부와 인접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으나 1960년대부터 주민들이 청정한 지역이미지를 부각시켜 지역활성화를 이룬 대표적인 장소마케팅 성공사례이다. 반딧불이를 잡아 도시에 놓아줌으로써 청정지역임을 홍보하고 ‘소 한마리 목장운동’을 통해 전국에 농업관광의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1970년대에는 음악제와 영화제를 개최해 문화를 매개로 독특한 지역이미지를 만들어 도시인들을 끌어모았다. 마을에 들어서자 좁은 골목길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유럽풍 기념품 가게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관광객들은 금방이라도 동화속 주인공들이 나타날 것 같은 난장이 마을을 걸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재미를 만끽한다. 마을 안쪽에 접어들면 제법 커다란 호수가 나타나는데 유후다케라는 산을 배경으로 마치 ‘이발소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호수 주변에는 오래 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한 온천탕이 남아 있어 향수를 자극한다. 또한 마을 곳곳에 갤러리와 도예공방이 있어 다양한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밤은 벳부에서 보냈는데 가마도 지옥온천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황재배지 유노사토를 가보았다. 지옥온천은 노천온천탕이 지옥처럼 끓어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고 족욕탕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한다. 벳부에는 마을 여기 저기서 온천탕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이는 마치 예전 한국 시골마을에서 저녁밥 짓는 풍경을 연상시킨다. 유노사토 유황재배지는 움막을 짓고 온천물에 함유된 유황을 지표면에 자연적으로 뽑아내는 방식으로 버섯재배하는 것과 유사하다. 유황을 채취해 유황오리를 사육하거나 유황성분이 가미된 건강미용 용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3박4일간 일본 큐슈에 머물면서 느낀 점은 일본 경제가 여전히 침체의 늪에 빠져있지만 엔화약세 효과를 통해 차츰 경기회복의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심리를 직감할 수 있는 대형 쇼핑몰에는 한국처럼 손님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눈속에 매화가 피듯이 차가운 겉모습 너머 일본 경제의 봄기운이 느껴졌다. /일본 큐슈=박준수기자 jspark@kjdail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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