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푸른길 도서관이 불을 밝힐 때

푸른길 도서관이 불을 밝힐 때
박준수
기획관리실장 겸 이사


입력날짜 : 2016. 02.01. 18:56

요즘 주말이면 광주 남구 푸른길도서관에서 카페라떼를 마시는 게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리집 아파트 앞에서 백운광장으로 이어지는 푸른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푸른길도서관에 도착하게 되는데, 별관에 위치한 북카페에 들러 마시는 커피 한잔은 여느 커피숍에서 마시는 것보다 풍미가 깊고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서적 ‘가득’

이곳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본관 열람실이 있기는 하지만 차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독서를 하기에는 이곳이 더 자유롭다. 간혹 초등학생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재잘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 요즘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이해할 수도 있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에서 동심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본관 3층 열람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열람실은 학생들 시험기간이나 입시시즌이 아니면 대체로 두 세개쯤 빈 자리가 있어 수급이 원활한 편이다.

필자는 창가쪽 자리를 좋아한다. 도서관 외벽이 창문으로 둘러있어 금당산이 바라보이고 실내에 햇살이 가득 들어와 독서조명을 유지해준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서가에는 고전에서부터 최신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서적들이 가득 꽂혀 있다. 인문학, 사회학, 역사, 경영학, 컴퓨터, 문학에 이르기까지 엄선된 양질의 도서들이 진열돼 있어 굳이 집에 있는 책을 가져가지 않아도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인문학이나 문학 서적을 즐겨 읽었으나 요즘에는 회사업무와 관련해 회계학, 경영학 책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개인PC가 여러 대 마련돼 있어 인터넷강의 등 온라인 콘텐츠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광주 원도심의 근·현대 역사를 정리한 ‘백년의 기억, 문화전당 광장과 골목길’을 집필한 바 있다.

이처럼 푸른길도서관에 빈번하게 드나들면서 이용하는 주민들과 직원들의 행동양식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용자 대다수는 학생들이지만 주부와 직장인 등 성인들도 많은 편이다.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이 자격시험 준비를 하거나 교양서적을 읽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직원들은 친절하고 이용자들의 니즈에 맞게 열람실을 잘 관리하고 있어 안락감을 준다. 지난주 폭설이 내린 날은 전직원이 나와 출입구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산층의 교양있는 삶 추구해야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서서히 은퇴하는 시기이다. 이들이 은퇴 이후의 삶을 보람있게 살 수 있는 시설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 필자는 베이비부머들이 가장 생산적이고 알차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동네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앞 세대에 비해 고등교육 혜택을 많이 받은 베이비부머들이 사회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다시 환원하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사색과 독서를 통해 암묵지(暗默知)를 명시지(明示知)로 가다듬는 일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제 날개를 편다’는 철학자 헤겔의 지혜를 생각할 때이다.

현재 광주시와 일선구청이 작은도서관을 비롯한 동네 도서관을 계속 늘려가고 있지만 푸른길도서관처럼 운영이 알찬 도서관을 많이 만들어 지역공동체 문화의 발신기지로 삼아야 한다.

도서관 기능을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라 신구(新舊) 세대가 함께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공동체의식을 공유하는 지식사랑방 역할을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동네 은퇴자 가운데 옛날 서당의 훈장과 같은 각 분야 지식인을 발굴해 재능기부 형식으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에서 중산층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외국어와 악기 연주, 시 낭송, 나만의 별미요리는 필수 덕목이라고 한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경제적 중산층이 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왔다면, 이제는 유럽국가들처럼 정신적으로 중산층이 되기 위한 교양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의 전환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인 광주에서 먼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원천은 동네 도서관이 밑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