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단
겨울 들판에 누워 있었다
가을걷이 끝난 논 한 가운데
지난 계절 꿈들이 참수되어 밑동만 남긴 채
허허로운 바람 결에 만장 깃발 흔든다
이랑 사이 수런거리던 푸른 잎사귀
빽빽하던 들녘에 나락 옷고름을 휘날리며
검게 그을린 농부는 굽은 등을 한번 폈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상투 목 잘린 채 파장한 논 바닥에
농부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
갑오년 동학군의 몸뚱이처럼
피범벅 되어 쓰러져 있었다
눈발이 하얗게 광야를 뒤덮고
화석처럼 굳은 뼈를 묻는 사람들
윙윙거리는 칼바람 끝은 허공을 맴돌고
초분 무덤 덤불에서
그래도 푸른 순 키우며 한겨울 지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