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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 예산으로 물거품된 다형문학잔치

쥐꼬리 예산으로 물거품된 다형문학잔치

 

가을이면 뭇사람들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로 시작되는 ‘가을의 기도’라는 시를 남긴 다형 김현승시인(1913-1975)이다. 다형은 7세때 부친 김창국 목사를 따라 광주에 이주해 양림동에서 소년기를 거쳐 숭일중학교 교사와 조선대 교수를 지내면서 주옥같은 현대시를 발표했다. 그의 대표시들은 양림동의 고유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많다. 무등산과 양림동 교회당 첨탑, 플라타너스, 대숲 위로 날아오르던 까마귀떼 등은 양림동의 생생한 풍경들이다. 다형은 특히 광주를 사랑했다. ‘산줄기에 올라-K도시에 바치는’에서는 자유를 위한 투쟁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정감이 조화를 이루어 꽃처럼 피어나는 도시로 표현하고 있다. 다형은 조선대 교수 재직시절 문병란, 손광은, 문순태, 박홍원, 진헌성 등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양성해 남도 현대문학의 계보를 만들었다. 또한 6·25동란중인 1953년 5월 동인지 ‘신문학’을 창간해 한국문학사의 단절을 막았을 뿐 아니라 한때 광주를 한국문학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했다.
이처럼 다형은 한국시단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 시인의 한 사람이자 광주가 낳은 불세출의 향토시인이다. 그럼에도 다형을 기억하고 기리는 기념사업은 해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형기념사업회는 그동안 광주시민들의 의식 속에 다형의 문학정신을 불어넣음으로써 예향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광주시 지원을 받아 전집발간, 학술세미나, 영상물 제작, 기념시비 건립 등 기념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광주시 보조금이 예년의 1/10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관련 사업을 중단해야 할 지경에 처해있다. 기념사업회는 매년 2-3천 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았으나 올해 사업예산은 비영리단체공모를 통해 확보한 300만원이 고작이다. 결국 기념사업회는 올해 계획했던 ‘다형문학잔치’를 포기하기로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문학행사에는 이보다 2배-7배 이상 지원해주면서 다형기념사업에는 쥐꼬리만한 보조금을 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이다. 광주시의 전향적인 검토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