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시장의 추억(수정)
비아시장은 비아초등학교와 더불어 내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숨쉬고 있는 장소이다.
장소와 공간은 어떻게 다른가. 공간이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장소는 인간의 활동이 축적된 구체적 개념이다. 예를 들면 ‘가상공간’이라고 하지 ‘가상장소’라고는 하지 않는다.
비아시장은 비아초등학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장날이면 왁자지껄한 장의 풍경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비아장과 비아초교는 예전에는 야산 언덕이었다. 비아장이 개장한 시기는 조선말쯤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구전에 의하면 장성 황룡 신거무장이 옮겨왔다는 설이 있다.
장이 서면 장옥은 물론 주변 도로에까지 상인들이 난장을 펼친다.
장날에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들이 있다. 첫 번째가 대장간이다.
비아장 부근에 대장간이 있었다. 장날이면 대장간에서 아저씨와 아줌마, 젊은 총각이 셋이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줌마는 풀무를 밀고 아저씨는 쇠를 달구고 총각은 쇠망치로 두드렸다. 대장간의 볼거리는 풀무가 당겨질 때마다 숯불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장면이다. 또 시뻘겋게 달궈진 쇠붙이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다듬은 후 물에 담금질 할 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신기료장수이다. 시장 도로 옆으로 낮은 적벽돌 담장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이곳에서 고무신을 때우고 있었다. 때워야 할 부분을 사포질로 마모한 후 접착제를 바르고 불에 달궈진 압축기로 한참을 눌러주면 상한 부위가 봉합이 된다.
마지막으로는 튀밥장수이다. 신기료 장수 옆에 튀밥장수가 진을 치고 튀밥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장작불 위에 튀밥기계를 한참 돌리다 펑~이요 소리와 함께 튀밥기계를 열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철망안으로 옥수수 튀밥이 쏟아진다. 이를 옆에서 구경하다보면 간혹 튀밥을 얻어먹기도 한다.
우리는 학교를 오갈 때 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직접 시장에서 고무신 한 컬레를 사본 적이 있다. 어머니가 직접 시장에 가셔서 사야 하는데 나에게 돈을 주며 장날이니 사서 신으라고 말씀하셨다. 학교 진입로 옆으로 자리를 펼쳐놓고 총각 두명이서 고무신을 팔고 있었다. 내가 고무신을 사겠다고 했더니 “어린이가 대견하다”며 신발을 골라 신겨주었다. 나는 기차표나 말표 고무신이 좋아서 그 걸 사고 싶었으나 총각들이 낯선 메이커를 신으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는 싫었지만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고 왔다. 그런데 역시 품질이 좋지 않았다. 착용감도 그렇거니와 내구성에서도 부실한 편이었다. 나는 지금도 왜 그때 내가 원하는 신발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가끔 유년시절 비아장의 추억이 그리워 시장 안에 있는 팥죽집에 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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