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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홍 시인, 농경사회 향수 물씬한 ‘농기구열전’ 펴내

전석홍 시인, 농경사회 향수 물씬한 농기구열전펴내

농기구에 얽힌 애환 70편 연작시로 풀어내

시편마다 웅숭깊은 서사시로 엮은 농촌사

 

공직 은퇴 이후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전석홍 원로시인이 농경사회의 향수가 물씬한 정감어린 시집을 펴냈다.

아홉 번 째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한국 농경사회를 지탱해온 농기구를 소재로 한 농기구열전’(시정시학 간행).

오로지 육체노동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어야 했던 옛날, 지게와 삽 등 농기구들은 사람과 한 몸이 되어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 농기구는 오늘날 현대식 농기계로 대체되어 농업박물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옛 유산이 되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전 시인은 농촌에서 생활할 당시 농기구를 보고 다루면서 친밀한 유대감을 쌓았다.

나는 농촌에서 자랐다. 그래서 농기구와 친숙히 지낼 수 있었다. 낫으로 풀을 베고 지게로 벼와 보리, 나무를 저나르기도 했다. 어른들만 부릴 수 있는 쟁기와 두레 같은 농기구는 옆에서 보면서 그 쓰임새만 터득하고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를 뼛속 깊이 새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전 시인은 이러한 옛 시절 추억이 깃든 농기구에 얽힌 갖가지 사연을 70편의 연작시로 풀어냈다.

서리칼날 뾰족한 창끝도 없는 괭이/두툼 납작한 기역자 매부리가/땅속 어둠을 찍어 끄집어 올린다//긴 나무자루 꽉 잡고/땅덩이 우주 정수리를 내리치면/흙살 놀라 솟구쳐 일어서고/자갈돌이 파내려가는 길 비켜준다”(농기구열전괭이, 1-2)

웅숭깊은 서사와 오묘한 리듬이 흥겨운 판소리를 듣는 듯 하다. 때로는 시로 엮은 농촌사로도 읽힌다.

전 시인은 농기구를 단순히 무생물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이 깃든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농기구는 삶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오는데 지팡이가 되어 주었다. 거기에는 농촌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농민들의 피와 땀, 손때가 서려 있으며 혼이 박혀 있다. 농기구를 보면 무생명의 도구가 아니라 저마다 표정을 지닌 하나의 생명체로 다가온다.”

여름내 베어 말린 산판 떼나무/가을철 지게 등짝으로 내려/겨울 아궁이 불화로 달구었네//신명이 난 낫날/내 왼새끼손가락 손톱 할퀴어/어릴 적 훈장 하나 이력처럼 선명하네”(농기구열전, 4-5)

전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눈 내리는 겨울밤 사랑방 호롱불 아래 모여 앉아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문학평론가 김재홍 경희대 교수는 서평에서 전석홍의 농기구 연작시들은 표면적으로는 농기구를 노래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농민들의 고단한 생활상을 반영한 것이고 심층적으로는 역사적 삶의 어려움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하고자 하는 철학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농기구열전은 전 시인의 문학적 체취와 서정적 깊이가 느껴지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