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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가을의 여로

가을의 여로
        박준수

 

여기는 추억이 피어나는 숲길
가난한 마음이 한잎 두잎 쌓여
시나브로 물드는 그리움의 나이테
붉은 창 너머로 너는
눈부신 소녀의 모습으로 걸어와
나무들 사이로 바람을 초대하지
이미 다녀간 소낙비의 젖은 머릿결을
매만지듯 품 안에는
바스락거리는 한 줄의 엽서
젊은 날 에드가 알렌 포우에게
바쳤던 헌시(獻詩)를 플라타나스 길따라
다시 읽는다.
낡은 수첩에는 지워버린 이름들
낙엽의 손짓에 혹시나
되돌아서 다가가보다가
푸드득 날아가는 새떼같은 얼굴들 
간이역 벤치에 앉아
한 음계씩 저무는 노을 바라보며
내 나이와 꼭 닮은 계절이 있어
사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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