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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다시 가고픈 추억 공간, 파리 마레지구

노천카페에서

 

오는 7일은 가을 길목으로 접어드는 입추(立秋)이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운 화염을 내뿜고 있는데 계절의 시계바늘은 어느 새 여름의 경계를 지나고 있다. 올 여름이 유독 무더웠기 때문에 ‘가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한결 서늘해진다. 가을이 오면 김현승 시인(1913-1975)의 ‘가을의 기도’, ‘플라타너스’ 등 시가 떠오른다. 그리고, 유럽의 푸른 하늘 아래 커피숍이 오버랩된다.

 

다시 가고픈 추억 공간, 파리 마레지구

 

우리나라에 커피숍이 요즘처럼 흔치 않던 2000년. 프랑스에 취재차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본 프랑스 파리는 동양권 문화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샤를드골공항 주변 외곽풍경은 여느 도시와 흡사하지만 시내에 이르게 되면 완전 다른 문명의 언덕이 나타난다.
옥색 하늘 아래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비롯 나폴레옹시대에 건축된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느낌이다. 마로니에 가로수 사이로 줄지어 늘어선 모던한 건축물들은 상가와 사무실, 여관으로 사용되지만 궁전처럼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군가에게 파리의 명소를 꼽으라면 에펠탑과 세느강, 노트르담성당,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몽마르트언덕을 언급할 것이다. 실상 파리는 어느 곳이나 매력적이 아닌 곳이 없다. 100년이 넘은 좁고 어둠침침한 지하철 갱도마저 여행자에겐 호기심을 자아낸다.
필자는 여기에 마레지구 노천카페(레스토랑 겸 카페)를 더하고 싶다. 파리시청 건너편 퐁피두센터 가는 길목에 유태인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다. 이곳은 동성애자들이 모여 그들만의 문화를 발산하는 곳이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노천카페들이 자리잡고 있어 파리의 낭만을 더해준다. 그곳 노천카페에서 파리지앵(파리청년)과 한국인 유학생들과 뒤섞여 커피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의 흥분과 낭만적 도취는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그 후 파리의 노천카페는 마음 깊이 채색되어 내게 문학적 갈망을 더욱 심화시켰고 다시 가고픈 동경의 장소가 되었다.
최근 타임(TIME)지에서 파리 가게주인들이 비스트로와 커피숍 등 노천카페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파리시내 어느 곳이든 넘쳐나는 노천카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2014년-2018년 사이에 파리시내 노천카페의 약 25%(적어도 300개)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특히 가족들이 경영하는 노천카페는 싼 가격의 체인점과 경쟁해야 하고 비싼 임대료를 맞추느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한다. 파리시내 사무직 근로자들이 점심시간 노천카페에서 장시간 보내는 대신 사무실에서 간편한 샌드위치로 해결하는 경향도 경영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파리지앵들도 노천카페는 도시의 역사와 이미지에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

 

금남로에 문화가 숨쉬는 카페거리를

 

노천카페의 기원은 19세기 초 이민자들이 저렴한 음식을 파는 단순한 바에서 시작됐다. 나중에는 지식인들의 사색과 창작활동 거점이 되었다. 1920년대에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파리시내 카페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수십년 후 보브아르가 뒤마고에서 실존주의 논쟁을 벌였다. 오늘날 비스트로는 맥주집 보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커피보다는 식사를 제공한다. 그 곳의 자유분방함이 문화와 계급을 초월하는 흔치않은 만남의 장소로 만든다. 노동자와 전문직업인, 가족, 학생, 여행자들이 그곳에 한데 모여 생각을 나누고, 토론한다.  
광주에도 수년 전부터 도시 곳곳에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주택가 골목에도 커피숍이 넘쳐난다. 동명동 카페촌이나 양림동 펭귄거리에 가면 분위기 좋은 카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파리와 같은 여유롭고 낭만적이고 활기 넘치는 사교의 장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현재 광주 도심의 카페는 스토리와 문화가 스며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노천카페와 유사한 곳을 찾으라면 대폿집이나 포장마차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대폿집은 보기어렵고 광주공원 포장마차는 야간에만 주점 위주로 영업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앞 금남로에 주말에 노천카페 거리가 조성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금남로라는 열린 공간에 젊음과 낭만을 발산하고 다양한 계층과 여행자가 함께 어울려 토론하는 광장이 필요하다. 광주만의 이야기와 색깔이 있는 노천카페가 있으면 좋겠다.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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