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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개망초

      

 

개망초

유월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산소엘 가고 싶었다.

아내가 수 일 전부터 산소에 있는 매실을 따러 가자고 채근하기도 했지만 불현 듯 부모님 생각이 나 집을 나섰다.
가족묘지는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1992년 9월 어머니가 쉰 여섯의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어 이곳에 유택을 마련하게 되었다.

당시 이곳은 고추밭이었다. 급하게 밭을 파내고 봉분을 만들었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길에서 내려 언덕 밭을 여러 개 지나 등성이 양지 바른 곳에 이르면 부모님과 윗대 조상들이 잠들어 계신다.  
잡초로 우거진 묵은 밭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봉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묘지는 한 여름 무성하게 자란 풀들로 어수선한 풍경으로 변했다.

1년에 두 세 차례 벌초를 해서 항상 정돈된 모습이었는데 폭풍 성장한 잡초들이 뒤덮은 묘지는 낯설게 느껴졌다.
뾰족뾰족 올라온 잡초들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은 개망초 군단이다.

점령군처럼 풀숲에서 보초를 서듯 서있는 개망초는 바람에 하늘거리며 군무를 추고 있다.

개망초! 이름은 촌스럽지만 꽃은 청순한 소녀의 얼굴을 닮았다. 꽃말은 다정다감한 느낌을 주어서인지 ‘화해’라고 한다.

가녀린 줄기 끝에 맺힌 노오란 꽃술과 하얀 꽃잎이 조화를 이룬 모양이 마치 계란 후라이와 비슷해 ‘계란꽃’으로도 불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떼로 일렁이는 모습이 아슴아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무덤에 누워계신 부모님의 영혼 한 자락이 개망초 꽃으로 피어 환생한 것 같다.

적막한 산중에 나 홀로 피어있는 개망초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절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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