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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독립의병기념관 건립으로 의향 드높여야

광주독립의병기념관 건립으로 의향 드높여야

 

광주시가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독립의병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시의적절하고 뜻깊은 일이다. 광주·전남은 동학농민전쟁의 주무대였을 뿐 아니라 한말 항일의병봉기의 핵심지역이다.
한말 항일의병봉기는 1896년부터 1909년까지 기간동안 3차에 걸쳐 전개된다. 1차 의병은 1896년 1월부터 위정척사파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유인석의 충주의병, 민용호의 관동의병, 경상도 안동의병이 활발했다. 호남이 다른 지방에 비해 1차 의병이 뒤늦게 일어난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상처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다.
2차 의병은 일제가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을 체결해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정치를 실시하자 각계각층에서 들불처럼 번져갔으며 호남의병이 전국의병의 중심을 이루면서 가장 격렬한 항쟁이었다. 면암 최익현과 임병찬이 주도한 2차 의병은 전국적으로 의병봉기를 독려했고, 전라도를 휩쓸면서 호남의병을 이끌었다. 이어 3차 의병은 군대해산 이후인 1907년 9월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축이 호남의병이었고 특히 광주·전남의병의 활약이 컸다.
3차 호남의병은 광주를 중심으로 서북지방을 무대로 활약했던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와 동남지방을 무대로 활약한 양회일과 이백래의 호남창의소, 그리고 독자적으로 활동했던 심남일, 안규홍, 양진여·양상기 부자의병대, 조경환, 김영백, 김동수, 김원국, 강사문, 이기손, 이대국 등의 많은 의병활동이 있었다.
1907년 9월에 봉기한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는 김용구통령, 동학군으로 활동했던 김태원 선봉장을 중심으로 광주·장성·영광·함평·나주·담양·고창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김준·김율 형제가 죽자 뒤를 이은 전해산이 남은 의병대를 수습해 나주·함평·영광·장성을 무대로 활동했는데, 때로는 조경환·심남일 의병대와 연합전선을 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1907년 가을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호남지역의 의병운동은 1908년 봄부터 1909년 가을 일제에 의해 실시된 이른바 ‘남한대토벌’ 때까지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독립의병기념관 건립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의향 광주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기념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