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철교에서
기차가 오지 않는 간이역 폐선 철교에서
포플러 나무가 간수(看守)대신 깃발을 흔든다
봄의 기적소리를 먼저 듣는
저 키다리 아저씨의 귓볼에
한 무리 새떼가 앉았다
깃털에 노숙의 흔적이 남은
앙증맞은 시베리아 제비
아무르강에 발목을 적시며 건너온
방랑자답게
그들은 이국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시베리아의 철자가 서툴지만
제법 방언이 익숙하다
바람은 들꽃을 불러모으고
어느 새 강뚝 아래 들판은 청중들로 가득찼다
제비꽃이 저기 푸른 눈을 내밀고
삐비꽃이 하얀 목을 뺀다
펄쩍 펄쩍 개구리가 뛰어나오고
그 뒤를 꽃뱀이 달려온다
낡은 철교에 기차는 오지 않고
간이역 빈 자리에서
봄의 향연에 취해 꿈꾸듯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