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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비오는 날 술집에서

비오는 날 술집에서


비오는 날 전주 막걸리집에서
너는 이미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로
바람기 짙은 은어를 담배연기와 함께 내뱉었지
가끔 열린 문틈으로 빗방울이 촉수를 뻗어
쌉쌀한 술맛을 감칠나게 핥기도 하고
돼지껍질이 타는 줄도 모르고
너의 눈빛과 나의 눈빛을 섞으며
저녁 한나절을 보냈지
뜬물같은 막걸리 한잔에
네가 풀어내는 고해성사는
얼마나 나의 가슴을 무너지게 했던가
젊은 날 네가 건네주던 노오란 프리이지어(Freesia)
한참 후에야 꽃말이 '천진난만한 마음'이란 걸 알았지
지난 세월을 천진난만하게 살아왔건만
가슴을 헤집고 불어오는 비바람은
몇 개의 산봉우리를 지나서도 그치지 않고
뚝, 뚝 꽃잎으로 떨어졌지
목을 타고 넘는 막걸리 한사발
그 안에 독기처럼 녹아있는 너와 나의 바람기
취기에 젖은 채 비와 한 몸이 되어
저문 밤길을 유령처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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