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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에서 들은 ‘호남민심’

서울에서 들은 ‘호남민심’


지난 설 연휴를 서울에서 보냈다. 세 자녀들이 직장과 취업준비로 서울에서 살고 있어 올해 처음으로 상경 길에 올랐다. 내려오는 것보다 올라가는 교통편이 수월한 까닭도 있지만 아이들 ‘저금살이’도 살피고 지인들도 만나볼 겸해서 역귀성을 선택했다. 대한민국의 정치·행정·경제·문화의 심장인 서울에서 3박4일간 머물면서 전라도를 한발짝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서울의 공기는 역시 남도의 흙 내음과는 뭔가 달랐다. 겉공기는 지구온난화로 올 겨울 내내 눈 한번 내리지 않은 광주처럼 포근했으나 속공기는 묵직한 ‘낯설음’이 느껴졌다. 필자는 대학졸업 후 취업준비 차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6개월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30여년이 흐른 지금 다시 와보니 ‘상전벽해’라 할 만큼 변해 있었다.


산업화시대 서러운 타향살이


지하철 노량진역 주변은 온통 고층빌딩들이 우후죽순 솟아 있어 옛 모습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학원들이 밀집한데다 컵밥 파는 포장마차들이 인도를 따라 길게 늘어선 풍경은 이 시대 청년들의 힘겨운 취업난을 말해주는 듯 했다.
1970~80년대엔 용산, 노량진, 영등포 역 등 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 서민동네에 전라도 사람들이 유독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TV드라마 ‘서울의 달’에서와 같이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의 끈끈한 인정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서울은 산업화 시대 시골청년들에게 동경과 기회의 땅이자 서러운 타향살이를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의 현장이었다. 이들은 주로 공장이나 시장 등에서 취업해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키워온 자수성가형 출향인사들이다. 지방에서 맨주먹으로 상경한 사람치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경우는 드물 것이다. 호남사람들이 정치적 선택에서 유독 응집력이 강한 것도 객지의 경험과 동향의식이 전이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설 전날 평소 알고 지내는 몇몇 출향인사들을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제는 대체로 4·15총선과 경제문제, 고향 이야기 등에 모아졌다.     
출향인사들은 특히 광주·전남의 4·15총선 판세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현재 야당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는 광주·전남 다수 의석을 민주당 후보들이 얼마나 차지할지가 궁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낙연 전 총리가 과연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지,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대권고지에 오를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현재 민주당내 역학 구도하에서 전라도의 지분 확보가 그리 녹록치 않다”면서 “지역내부에서 인재를 키우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영원히 변방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창 달아오르던 정치좌담이 시들해지자 화두가 경제 이야기로 옮겨갔다. 최근 경제흐름이 안좋아 체감 경기가 바닥이라는 지적과 함께 서울 집값 폭등에 대한 걱정이 쏟아졌다. 지인들은 다행스럽게도 강남 재개발지구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 혜택을 본 입장이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대해 불안감을 토로했다. 자신들은 살 만큼 살아서 괜찮으나 청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암담하다는 것이다.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 피력

경제 이야기 끝에 지난해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한 금호그룹에 대한 아쉬움도 화제에 올랐다. “한때는 재계 10위권에 올랐던 호남의 대표기업이 하루 아침에 주저앉은데 대해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안타깝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서울에 살면서 호남기업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긍심이 컸는데 유망한 계열사들이 줄줄이 매각되고 중견기업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 됐다고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 지역 정치권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조용히 지나가는 것도 의아스럽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이번 설을 서울에서 보내면서 그동안 지역에서 느끼지 못한 여러 가지 사안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반추해볼 수 있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주제는 역시 정치풍향이다. 정치구도에 따라 모든 삶의 조건과 환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4·15총선은 호남인에게 매우 중요한 선택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차기 대선의 전초전일 뿐 아니라 호남의 미래 운명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에서 들은 ‘호남민심’이 그 판단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