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열차’와 호남민심
박준수 편집국장
입력날짜 : 2012. 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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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행열차’의 내포적 의미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된다. 먼저,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서울의 유력인사들이 광주·전남지역을 지역구로 택하기 위해 너도나도 이 지역을 찾는 모양새를 비유한 것으로 약간의 풍자성을 띠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거물급 인사들이 선거때만 되면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명함을 찍어 돌리는 행동을 은근히 꼬집는 묘미가 있었다.
이어, 오는 12월19일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남행열차’가 다시 지역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여야 경선에 참여한 예비후보들이 잇따라 이 지역을 찾아와 민생탐방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남행열차’에 빗대어 표현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지난주 첫 경선 합동연설회 장소로 광주·전남을 택하고 “호남발전을 책임지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여야 모두 대선 승리의 첫 단추를 호남에서 꿰보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선거를 앞두고 ‘남행열차’에 몸을 싣고 표밭을 누비는 것은 당연한 정치활동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호남민심은 착잡한 게 사실이다.
그간 민주화의 성지로서, 두 번의 정권창출의 주역으로서 역사의 중심에 섰던 광주·전남이 DJ(김대중 전 대통령)이후 유력 정치지도자가 부재한 상황을 맞아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이 느껴진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영남에 기반을 둔 인사가 다수이고, 호남에선 정세균과 박준영이 전라도의 자존심을 내걸고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다.
이런 판세를 간파한 대권주자들은 결집력이 약해진 호남에서 외연확대를 노리고 저마다 광주·전남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고 있다. “아내가 전라도 사람이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전라도와 돈독한 정을 쌓았다”, “전라도가 제2의 고향이다” 등등 한물간 지역주의를 들먹이는 후보가 적지않다. 그만큼 호남의 정치적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상해 틈새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새누리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위원장은 현 MB정권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5·18에 대해서도 올들어 두 차례나 망월동 민주묘역을 참배하는 등 그동안 껄끄러웠던 광주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또한 후보들은 호남민심을 껴안기 위한 나름의 공약을 펼쳐보이고 있으나 그들이 제시하는 호남발전 청사진은 아직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간 MB정권이 보여준 인사, 예산 등‘호남푸대접’을 통해 립서비스의 실체를 뼛속깊이 실감하고 있는 터인데다가 영남권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동남권 신공항건설 이상의 호남에 대한 야심찬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사업의 리모델링 정도의 공약으론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 의문이다.
끝으로, ‘남행열차’의 역사적 궤적을 더듬어 보면 정치적으로는 ‘지역주의’가, 경제적으로는‘호남낙후’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남행열차’에 등장하는 호남선(대전-목포)은 무려 34년이나 걸려 2004년 4월 복선화가 마무리됐다. 현재 KTX 오송-목포 구간도 자꾸만 개통시기가 지연되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역시 2015년 7월 이후로 미뤄졌다. ‘5+2’ 광역경제권으로 지역전략산업 예산은 영남의 반쪽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역주의는 바로 이러한 경제적 차별로 인해 잉태된 정치적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남행열차’는 호남민심의 복잡 미묘한 정서를 아우르면서도 노랫말처럼 한켠에 감상(感傷)적인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
이번 대선이 지역주의와 호남낙후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호남의 정치적 선택과 대권주자들의 새로운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려져 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마지막 열차/ 기적 소리 슬피우는데…//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의 가사가 더 이상 호남의 현실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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