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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월, 잊혀지지 않는 얼굴 그리고 자유

오월, 잊혀지지 않는 얼굴 그리고 자유
박준수 편집국장


입력날짜 : 2013. 05.28. 00:00

해마다 오월이 되면 잊혀지지 않는 후배 얼굴이 떠오른다. 80년 5·18 당시 17세 소년이었던 그는 평범한 공장근로자였다. 그는 공수부대가 도청을 접수해 시민들과 대치할 때 맨 선두에서 시위를 벌이다 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수습된 후 그의 죽음을 전해들었 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친구처럼 각별하게 지낸 탓도 있지만 명랑하고 유순했던 그가 투사가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맞서다 진압군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자개공장엘 다녔다. 부모님은 양동시장 근처 판자촌에서 무허가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값싸게 숙식을 제공하는 일종의 하숙집인 셈이었다. 그 후 한 동안 나는 그의 죽음을 잊은 채 살아왔다.

그러다 대학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해 5월 영령 추모 기사를 접하면서 다시 그의 존재를 일깨우게 되었다. 사회부 후배 기자가 망월 묘역에서 그의 어머니와 인터뷰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나는 망월묘역에 잠든 그를 찾아가 명복을 빌었다. 아울러 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그의 꽃다운 생명의 몫까지 더해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염원과 달리 그의 가족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폭도라는 누명 속에 살림살이는 더욱 궁핍해졌고, 동생은 정신이상으로 떠돌아 다니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신군부의 권력 야욕이 채 피어보지 못한 어린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마저 나락으로 내던진 것이다.

5월이 되면 마음 한 켠에 앳띤 그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을 지새곤 한다. 오월 광주는 33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가슴에 드리워져 있다. 누군가는 소리 없이 피울음을 울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망각 속으로 빠져든다.

5월이면 광주에는 두 세력이 조우한다. 80년 목숨 바쳐 광주를 지켰던 민주영령들의 귀환과 그 대척점에서 총을 겨누고 민주화를 짓밟은 신군부와 일부 보수세력이 그들이다. 민주열사들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떠났지만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신군부와 일부 보수세력들은 5·18을 칙칙한 송장냄새 풍기는 시체공시장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려 하기보다는 ‘폭도’, ‘북한의 사주’ 등 색깔 용어로 후벼 파고 희화화하며 조롱하고 있다.

광주만이 겪은 현대사의 비극을 왜곡시켜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5·18 33주년 기념주간은 일부 광적인 언론과 보수세력의 오월정신 폄훼와 왜곡이 극에 달했다. 유족들과 광주시민들의 가슴은 또 한번 멍들었고, 민주화 성지 광주는 덧난 상처처럼 오월의 아픔을 다시 되새김해야 했다.

MB정부 5년 내내 무관심속에 방치된 오월이었기에 새 정부들어 처음 맞이하는 이번 5·18이 국민통합과 화해의 역사적 장이 될 줄 기대했으나 오히려 갈등만 키우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1997년 정부가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정당성이 부정되고 더 나아가 악의적으로 덧칠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애통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를 찬탈해 36년간 강점한 일본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기는 커녕 되레 미화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작태와 다름없는 일부 종편과 일간베스트(일베)의 천박한 입놀림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이번 5·18 33주년을 갈무리하며 오월정신을 다시 곧추 세워야 할 당위성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정당한 역사적 자리매김과 전국화·세계화를 통한 진실 전파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세력의 대동단결과 5·18 가해자들의 준엄한 단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유명한 저서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에서 인간의 결정요인은 ‘자유’라고 강조했다. 자유를 억압하는 사슬을 끊어내고자 했던 80년 5·18은 프랑스혁명과 같이 세계사에 길이 남을 천부적인 인간정신의 발로이자, 장엄한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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