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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진년, 흑룡을 기다리며

임진년, 흑룡을 기다리며
박준수 편집국장


입력날짜 : 2012. 01.10. 00:00

2012년 새해도 벌써 열흘이나 흘렀다. 그러나 언론 등에서 ‘60년만에 찾아오는 흑룡의 해’라며 요란하게 떠들어댄 임진년(壬辰年)은 실상 문턱도 넘어오지 못했다. 십이지(十二支)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흑룡의 해가 시작되려면 아직도 열흘 남짓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흑룡의 해가 환하게 밝았으니 굳이 따질 일은 아니다.
임진년(壬辰年)이 흑룡의 해인 것은 검은 색의 임(壬)과 용을 나타내는 진(辰)이 결합해 이뤄진 것이다. 또 오행 중 수(水)에 해당하는 임(壬)과 토(土)에 해당하는 진(辰)이 합쳐진 해여서 2012년을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용이 승천하는 해’라고 부른다.
역학자들은 “12띠 동물중 특히 용에 상서롭고 길한 의미가 담겨 있어 다른 해보다 좀 더 희망적인 변화를 기대해볼만 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국운상승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갖추어지는 시기로, 이제까지 혼란스럽고 애매했던 문제들이 풀리거나 해결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용의 해 역사적 자취를 더듬어 보자. 올해는 임란이 발발한 지 420주년 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은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해 7년간 한반도를 유린한 사건이다. 당시 무사안일에 빠진 조선 조정은 피란가기에 바빴고 관군은 무기력했으며 힘없는 백성들만 왜군의 분탕질에 희생양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이순신장군이 남해에서 대첩을 거두고 호남의병이 내륙에서 왜군을 격퇴함으로써 ‘若無湖南 是無國家’의 국난극복 위업을 남겼다.
임란은 일본에서는 ‘분로쿠(文祿)·게이초(慶長)의 역(役)’이라 불리우는데, 그 유적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사가현 가라츠에 위치한 히젠나고야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위해 건설한 출병기지로 지금도 그 흔적이 선명하다.
필자가 2년전 취재차 방문한 가라츠는 유럽 지중해를 연상할 정도로 낭만적인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나고야성에 들렀을 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최단거리(직선거리 190km)에 있어 조선침략의 거점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일본열도와 한반도 교류사’를 주제로 한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전시관에는 임란당시 조선군 귀와 코를 바친 장부와 홍호연(洪浩然) 등 피랍인의 기록들이 전시돼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말해준다.
또한 박물관 건너 산기슭에는 나고야성터가 오롯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벽과 천수각 등 건물은 모두 허물어지고 주춧돌과 유구만 남아 있으나 조선침략의 야욕에 불탔던 다이묘들의 호령이 귓전에 맴돈다. 이곳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만 명의 왜군을 출병시켜 7년간 조선땅을 짓밟았다.
성터에 올라 한반도를 바라보니 지도자를 잘못 만난 백성들이 당해야 했던 참상이 떠올라 울분이 솟구쳤다.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해이다.
승천의 기운이 깃든 해에 양대 선거가 실시되니 용이 되고자 하는 입지자들이 부쩍 많은 것같다. 4·11 총선에 광주·전남에서 140여 명이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고 한다. 평균 경쟁률이 7대1로 사상 최고가 될 전망이다.
누가 용이 될지는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특히 이번 선거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분노한 민심의 폭발력이 적나라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지역구도나 거대정당에 온존한 기득권이 깡그리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
이러한 민심흐름을 반영해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당들이 개혁과 쇄신의 용광로에 뛰어들고 있다. 한나라당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보수를 버리고 민주당이 통합을 위해 진보의 색깔을 선명히 하는 등 과거의 허물을 벗느라 용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공감과 소통이다. 거죽만 용의 탈을 쓴다고 모두 용이 될 수는 없다. 국민의 시린 마음을 읽어내고 언 몸을 녹여내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지도자가 흑룡이 될 수 있다. 결국 흑룡은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승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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