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뿌리를 캐며
이른 봄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다가
허옇게 말라 죽은 소나무 관목을 보았다
온몸이 칡넝쿨로 칭칭 감긴 채
가지만 앙상한 잿빛 고사목이 되었다
길고 가느다란 혀를 날름날름 뻗쳐
지난 계절 푸른 꿈을 허무하게
앗아가버린 고약한 녀석
그를 찾아내 기필코 응징 해야겠다 다짐한다
땅속 깊이 박힌 은신처를 곡괭이로 세게 내리친다
파면 팔수록 지하로 뻗어가는 뿌리근육
개구리를 삼킨 구렁이 몸뚱아리 마냥
탐욕스러운 배가 불끈 솟아 있다
비만한 그의 허리춤을 단단히 붙들고 톱질을 한다
마침내 팔뚝만한 녀석의 몸통이 떨어져 나왔다
몸속에는 여러 갈래 손길로 휘감은 관목 수액이
섬유질로 농축돼 있다.
선량한 소나무 고혈을 빨아 어둠 속에서 마음껏 제 허기를 채운
음흉한 족속
겨우내 꿀잠에 취한 칡뿌리를 캐며
세상에는 촉수를 늘어뜨린 칡넝쿨이 무수히 널려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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