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 강(江)의 부활과 광주 복개천
박준수 시인‧경영학박사
서구권 여러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에 매립했던 도심 인근 강과 하천을 복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로 강이 오염되자 메웠던 물줄기를 수 십년이 지난 오늘날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다시 흐르게 하려는 시도가 유럽과 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파리로부터 약 21㎞ 떨어진 비에브르(Bievre) 강은 파리 남부를 거쳐 세느강에 합류하는 물길이었다. 그런데 산업화로 인해 가죽공장과 염색공장의 폐수가 강으로 흘러들어 심하게 오염되었다. 강물에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검게 변해 죽어가는 강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당국은 그 강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1912년에 마지막 구간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산업활동의 결과로 야기된 기후변화가 이 강의 운명을 바꾸고 있다.
매립한 강줄기 되살리는 파리
지구온난화로 파리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평균 2.3℃ 상승했다. 숲과 강이 사라진 결과로 열섬현상이 발생해 한여름 파리의 기온은 근교 농촌지역보다 8℃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파리시는 미래의 쾌적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비에브르 강을 활용하기로 구상했다. 강이 흐르면 물 분자가 공기중의 열기를 흡수해 지표면의 기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안느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은 지난해 녹색당과의 연대 조건으로 비에브르 강을 부활시키는데 동의했다. 현재 이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며, 1천600만 달러를 들여 2026년까지 파리시내 구간 물줄기를 되살릴 계획이다.
당국은 이에 앞서 파리 남부 근교 아르퀴엘을 비롯한 여러 소도시에 흘렀던 작은 물줄기를 복원시켰다. 올해 봄에는 아르퀴엘의 한 구간이 준공되었다. 2026년 파리시내 구간이 복원되면 근교의 여러 갈래 지류와 합쳐져 세느강으로 물이 흘러들게 된다. 파리시는 비에브르 강물을 파이프로 연결해 세느강으로 유입시킨다는 계획이다.
비에브르 사례 외에도 기후변화에 대응해 매립되었던 강을 복원하는 노력이 지구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는 지난해 5월, 50년 전 매립되었던 메들록(Medlock) 강의 도심구간을 복원시켰다. 미국 뉴욕시 당국은 홍수위험을 줄이기 위해 1억3천만 달러를 들여 브롱크스(Bronx)구의 티벳츠 브룩 강을 복원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강의 복원 시도는 한때 자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을 개발의 핵심요소로 생각했던 도시개발자들에게 역설적인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한 기후변화 전문가는 “강물의 진정한 물길의 방향이 어디인지, 숲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자연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볼 시간이다”면서 “이제 도시들이 점차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복개 걷어내고 친수공간으로
기후변화 시대에 강의 복원 문제는 광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시민들 사이에 태봉산을 헐어 메워진 경양방죽을 복원하자는 주장이 때때로 나온 바 있지만, 그보다는 광주 도심 을 흐르는 복개천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도심 주택가를 관통하며 흐르는 동계천을 인상 깊게 보았다. 무등산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동명동 옛 광주여고 담장을 지나 대인시장, 수창초교를 돌아서 양유교 부근 광주천으로 합류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 당시 하천은 연탄재와 쓰레기 투기, 생활하수로 인해 오염이 심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다가 차량이 늘어나면서 도로확충과 도시미관을 위해 시멘트로 포장해서 복개를 해버려 더 이상 물의 흐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복개천을 복원하는 방안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옛날과 달리 이제는 오폐수처리가 잘 이뤄지고 있고 도로도 충분히 확보되어 교통문제도 장애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례로 옛 광주여고 뒤편 구간을 복원하면 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해 ‘청계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심해지고 있는 광주의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친수공간 조성으로 시민들에게 색다른 휴식처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 광주도 끊어진 물줄기를 되살리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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