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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겨울강 4

겨울강 4

 

며칠째 쏟아진 눈발은 강가 수풀 위에 묵상의 말씀으로 빛나고 있다

동트는 즈음, 강물은 나직한 설교를 듣느라 반쯤 졸고 있다

한 번의 기습 한파에 세상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니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두가 한 종족이 되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

그래서 아기 예수는 한 겨울 눈과 함께 높은 곳에서 낮은 이 땅에 오셨을까

텅 빈 들판은 표정이 없고,

대신 겨울새 떼지어 날며 그들만의 축제를 벌인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려 오로지 그들만의 영토가 설원 위에 펼쳐졌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오래 전 강변을 떠나 버려진 마을 터만 남아 있다

낮은 구릉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숲과 감나무 한 그루, 그리고

묘목과 잡풀들이 하얀 화선지 위에 고즈넉이 그려져 있다

이따금 철길을 지나는 기차들이 문명의 경계선을 일깨워준다

한쪽은 오랜 추억을 품은 논들이 누워 있고,

한쪽은 아파트 숲이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높이 쳐들고 있다

그 사이로 경전선 완행열차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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