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22·끝)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22·)

 

상하이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클라라(Clala)라고 말했다. 내가 가족들 선물을 사기 위해 라파예트백화점에 가야겠다고 말하자 자기도 백화점에 갈 생각이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혼자서 심심하던 차에 뜻밖에 동행이 생겨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미모(?)의 젊은 여성이 이런 제안을 해오니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나는 뭔가 홀린 느낌으로 그녀와 함께 근처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하고 화려한 백화점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쇼핑을 하는 사이 금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점심때가 된 것 같아 클라라에게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노천카페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개인 신상에서부터 직장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영화속 한 장면같은 우아하고 낭만적인 식사를 즐겼다.

어느 덧 스튜디오로 가야할 시간이 다가와 나는 클라라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스튜디오로 돌아와 짐을 챙겨서 방을 나설려고 하는 차에 그녀가 찾아와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프라이브르크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머리에는 파란베레모를 쓰고 짧은 스커트 차림에 부츠를 신은 모습이었다. 마치 여군 복장을 한 듯 보였다. 보디가드로서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이 물씬 느껴졌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샤를드골공항으로 향했다. 꽤 시간이 걸렸는데 가는 도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모님에게 드릴 선물은 사셨나요?”라고 물었을 때도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몸은 파리를 떠나고 있는데 마음은 에펠탑에 매달린 연처럼 허공만 빙빙 맴도는 느낌이었다.

공항 대합실에 도착해서 비행기 출발시간을 살펴보니 1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잠시라도 더 오래 있고 싶어 라운지 바에 들어가 양주를 두 잔시켰다. 그녀와 마지막 작별의식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유리잔을 부딪히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불빛에 반사되어 내 마음을 찔렀다. 나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짧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눈물 대신 양주를 한 모금 삼켰다. 위속으로 들어간 알콜이 싸~하게 혈관속으로 흡수되는 순간 내 영혼이 유리잔처럼 부숴져 산산이 흩어지는 걸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