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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거이변과 이정현

선거이변과 이정현
박준수

미국 버몬트주에서 일어난 이변

하나의 역사가 되기 위한 조건들


 

입력날짜 : 2014. 08.04. 21:25

 

7·30 재보선에서 민주당 아성인 순천·곡성에 출마해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이변의 주인공으로 연일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사실 모든 선거는 크든 작든 이변이 연출되는 무대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민심은 그때 그때 변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가 발달한 미국에서 벌어진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1996년 버몬트주에서 50년 동안 소를 키워온 70대 농부(프레드 터틀)가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영화감독의 눈에 들어 ‘계획을 가진 남자’(Men with a plan)라는 제목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그는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게 되는데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이다. “나는 일 평생을 가축우리에서 지냈기 때문에 돈 안드는 집(House·상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출마의 변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단 한 표 차이로 현역 상원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한다.

이 영화는 버몬트주 극장에서 히트를 치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2년 후 그가 실제로 공화당 상원의원 예비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상대는 재력가에다 명문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막강한 실력자 맥뮬렌. 이에 반해 프레드는 고등학교 중퇴에다가 정부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생보자이다. 맥뮬렌은 선거비용으로 5억원을 지출했지만 프레드는 고작 선거자금 모금 피켓 제작비로 20만원을 썼을 뿐이다.

더군다나 프레드의 부인은 남편의 선거를 돕기는 커녕 “남편에게 투표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며 오히려 훼방꾼 노릇을 했다. 그런데 선거결과는 놀랍게도 2만4천 561표 대 1만9천 962표로 프레드가 승리하는 이변이 나타났다.

이같은 황당한 결과가 나온 데에는 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의 역선택 전략이 개입돼 있었고, 프레드가 메사추세추 출신으로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맥뮬렌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어쨌든 선거는 객관적인 전력 이외에 보이지 않는 변수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거출마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조심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나 보다.

이번 7·30 재보선에서 이정현 의원도 객관적인 전력은 절대 열세였지만 보이지 않는 변수를 유리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수정당 후보로는 26년 만에 민주당 텃밭에서 당선되는 선거 역사를 쓴 것이다.

우선 그는 언론의 기호에 맞는 탁월한 스토리텔러(storyteller)이다. 선거기간 내내 나홀로 선거운동을 해 주목을 받았다. ‘이정현’ 이름 석자가 적힌 빨간 조끼에 남방, 면바지 차림으로 새벽 4시께 공중목욕탕, 가스충전소, 기사식당을 찾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 중고자전거와 유세차를 타고 순천과 곡성 마을 곳곳을 누벼온 것이다. 과거 광주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는 임금복장으로 유세를 벌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한 그의 정치인생은 파라독스(역설)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5·18 상처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이글거리던 시절 1984년 민정당 구용상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 1995년 광주시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을 맡기도 했다. 2004년과 2012년 총선에도 민주당 아성인 광주에서 여당후보로 나서 고배를 마셨다. 견고한 지역주의와 5·18의 심판의지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2004년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 시절부터 현재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여당과 호남의 교두보 역할을 해오고 있다.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 4년 연속 예결특위 위원을 지내며 호남의 각종 숙원사업을 꼼꼼히 챙겨 ‘호남예산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새누리당(전신 한나라당·민정당을 포함)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는 민주당 텃밭에서 30년간 외곬으로 무모하다시피한 도전에 나선 끝에 한국 정치사에 의미있는 변화의 씨앗을 발아시켰다. 하지만 그의 이변이 지역주의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지렛대로 작동할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난마처럼 얽힌 지역주의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고차 방정식의 해(解)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의 이해와 직결된 복잡미묘한 양태를 지니고 있다.

그가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호남의 인재를 키우고 낙후된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변이 개인의 영광으로 그쳐서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하나의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정현의원과 정부, 새누리당 그리고 지역민이 함께 뜻을 모아야 가능할 것이다. 7·30 재보선의 이변이 역사를 바꾸는 기적으로 이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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