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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In서울’과 전남대

 

‘In서울’과 전남대

 

박준수

 

전남대가 개교한 지 올해로 62주년이다. 1980년 이전만 하더라도 전남대는 거점국립대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지방 명문대 중 하나였다. 전국 각 처에서 수재들이 몰려들었고 높은 입시 경쟁률로 인해 호남의 콧대 높은 상아탑으로서 위상을 뽐냈다. 또한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들도 남다른 긍지가 있었다.

그러나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전남대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성이 빛바랜 채 옛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여기에 이른 데는 무엇보다도 80년대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 직면해 민주화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했던 역사적 소명에 대한 상처가 작용했다고 본다. 그로 인해 민주화 성지라는 값진 명예를 획득한 반면 학문의 전당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흔들리는 거점국립대의 위상

이어 1990년대 이르러서는 수도권으로 경제력과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소재 대학으로 진학 러시를 이루는 이른바 ‘In서울’ 현상이 나타나 지방거점대학은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학 신증설과 정원 확대, 편입학 허용으로 수도권 대학 문호가 활짝 열려 지방대학의 입학자원은 급속히 감소하고 질적으로도 저하되는 악조건이 중첩되었다.

그렇다고 그 게 오늘날 전남대 현주소에 대한 모든 귀인(歸因)일까? 앞에 언급한 외부 환경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한 원인진단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허전하다. 왜냐하면 갈수록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욱 심각한 것은 향후 대학선택의 당사자인 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이 ‘In서울’에 대한 환상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로 진학할 경우 비싼 납부금과 생활비 등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In서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In서울’ 선택 동기에 작용하는 인자(因子)는 크게 즉시적 효과와 미래적 효과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자는 평판도 즉 대학간판으로부터 얻는 효용이고, 후자는 취업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비교우위 프리미엄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양자는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평판도는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장소적 이분법으로부터 비롯된 편향된 인식에 기초한다. 서울은 크고, 화려하고. 국제적인 것과 같은 젊은 취향에 어울리는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반해 지방은 작고, 한적하고, 전통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인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적인 대도시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중국산 의류라도 파리나 뉴욕의 아울렛 매장에서 산 것이라면 뭔가 특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취업경쟁에서 갖는 프리미엄은 평판도의 연장선상에서 채용주체인 대기업들이 조장한 암묵적인 담합의 산물이다. 인사담당자들이 갖는 ‘In서울’의 동류의식에다가 우월의식, 기업간 경쟁의식이 단단히 묶여져 ‘In서울’ 출신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지방대 출신은 서류전형 단계에서나 대부분 밀려나기 일쑤이며 소수만이 정부가 권장하는 지방대출신 배려 몫으로 행운을 얻는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철저히 계량화된 대기업 인사시스템에서 지방대 출신이 갖는 비계량적 장점들은 파고들 여지가 거의 없다. 해외어학연수, 토익(TOEIC)점수, 경시대회수상경력, 인턴십, 자원봉사실적, 학점 등 이른바 스펙(spec)을 놓고 볼 때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옛 명성 복원 캠페인 시작해야

이제 내부로 눈을 돌려 귀인(歸因)을 찾아보고 대책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학 평판도에서 지역적 불리를 극복할 가장 결정적 요소는 대학의 학문 경쟁력이다. 교수와 대학원생이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불을 밝혀가며 연구에 매진해 국제학술지(SCI) 수준의 높은 연구성과를 많이 창출해내야 한다. 최근 전남대의 연구실적이 향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다른 거점국립대에 비해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학문의 경쟁력은 학생보다는 교수의 열정과 능력에 좌우된다.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따뜻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적극적으로 이끌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얼마만큼의 애정과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대학의 발전정도는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우선 교수들부터 더 이상 ‘In서울’의 유행을 쫓지 말고 자녀를 본교에 진학시키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특히 전남대의 경우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100% 발휘하지 못한 중위권 학생들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는 대학당국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고 격려와 지원을 다해 자신감을 북돋워주어야 한다. 국립대의 경직성에 벗어나 철저히 수요자 중심의 교육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식의 안도감에 젖어서는 전남대의 위상은 더욱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16개 공공기관 입주가 본격화되고 내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할 예정이어서 외부환경은 다소 희망적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남대와 동창회가 함께 힘을 모아 모교의 옛 명성을 복원하는 대학재건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