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마을의 봄
1.
스님의 바리때를 엎어놓은 듯 둥근 마을
발산(鉢山)에 가보았나요
도시 속 시골이라 봄도 시골스럽네요
산머리에 화관처럼 앉은 과수원에 매화 한 그루
시절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꽃망울을 푸네요
산비탈 길을 따라 시누대밭에
잠든 고양이 바람난 봄바람이 슬쩍 건드리는데
실실풀린 햇살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배시시 웃네요
아무도 살지 않는 옛집 앞마당은
빛바랜 고지서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빈 방 벽면에는 묵은 달력이 지나간 날들을 추억하네요.
2.
처마가 층층이 높이를 낮추어 풍경을 공유하는
발산(鉢山)에 가보았나요
사람들은 날마다 하늘정원을 바라보며 꿈을 꾸지요
꿈틀대는 광주천 그 위로 뽕뽕다리의 아련한 전설,
방직공장이 옛 영화(榮華)를 드리우고
실을 뽑고 옷감을 짰던 10대 소녀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이 봄을 맞고 있을까요
도시는 시간이 흐른 만큼 나이테를 두르듯
자꾸 몸집이 커가지만
이곳은 예전 그대로 달동네 모습
여전히 꽃샘추위가 문밖에 서성거려요.
3.
텃밭에 봄이 파릇파릇 기지개 켜는
발산(鉢山)에 가보았나요
비밀의 화원이 열리듯 생명이 움트는 소리
골목마다 청년들이 들어와 희망의 집을 짓고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어 작품을 탄생하는 창작마을
일본 요코하마의 코가네쵸처럼,
싱가포르 TVA처럼,
사람의 온기와 예술의 향기가
날숨과 들숨으로 만나는 순수의 고향
광주의 산업화를 온 몸으로 껴안은
그 언덕에 올라 봄의 숨결을 느껴 보아요.
*발산마을은 광주 서구 양3동 광주천에 인접한 서민주택가로 1960~70년대 방직공장 여공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고지대 달동네. 지금은 마을원형을 유지하면서 예술과 접목한 도시재생사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돼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