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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월의 길 위에서

오월의 길 위에서
박준수 본사 상무이사

  • 입력날짜 : 2017. 05.01. 18:45
다시 우리는 오월의 길 위에 서 있다. 벌써 서른일곱 해 째이다. 이맘때 광주에는 이팝나무꽃이 오월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광주 남구 푸른길공원에도 어김없이 이팝나무가 푸른 이파리 사이로 하얀 꽃술을 내밀고 숙연한 자태로 서있다. 이팝나무는 오월에 흰 꽃을 머리에 드리운 모습이 마치 소복입은 여인과 같다고 하여 ‘5·18나무’로도 불린다.

5·18 진실규명으로 명예회복을

이팝나무꽃이 필 때면 80년 5월 금남로에서 산화한 초등학교 후배 김종철이 생각난다. 당시 그의 나이 불과 18살.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나와 함께 자개공장에 다녔다. 나는 얼마 후 검정고시 시험준비를 위해 공장을 떠났고, 몇 년이 흐른 80년 5월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종철은 금남로에서 시위도중 도청쪽에서 날아든 총탄에 의해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늘 웃음이 가득했고 나보다 나이는 적었지만 의젓했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외부세계와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질식할 것 같은 외로움과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다. 그것이 나와 이웃들이 겪은 80년 5월 광주의 전말이자 진실이다. 그런데 전두환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간첩배후설 등 허구적인 이야기로 진실을 왜곡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참으로 참담한 망언이 아닐 수 없다.

오월의 길 위에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생각해본다. 오월은 선거때마다 핫이슈로 등장한다. 유력 대선 후보 중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등 3명의 후보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채택했다. 문 후보는 헌법전문에 오월정신을 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때 푸대접 받았던 5·18기념식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등 격식을 갖춰 엄숙하게 거행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다분히 호남표심을 의식한 공약이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다. 광주는 이제 더 이상 정치의 희생양으로서 언급되어서는 안된다. 흥정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최선의 길이다.

박근혜 탄핵이후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뜨거운 가운데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집권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현재의 판세대로라면 이변이 없는 한 양당 후보 가운데 한명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부끄러움 없는 선택으로 희망을

그리고 누가 되느냐는 호남의 영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남은 역대 선거에서 전략적 선택에 기초한 투표행태를 보여왔다. 그것은 결국 상황변화에 따른 현명한 판단과 결집력에 기인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국민의당 녹색돌풍이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80년 5월 겪었던 트라우마가 집단무의식속에 그러한 선택으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선택지를 앞두고 우리는 누가 최적의 대안인지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판단의 준거는 오월정신에 누가 더 가까이 있는지, 누가 촛불로 표출된 개혁요구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 누가 4차산업혁명을 잘 대응해나갈지, 누가 서민경제를 풍요롭게 살찌울 수 있을지를 깊이 살펴서 선택해야 한다.

아울러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임기가 시작되는 새정부 출범에 대비해 호남의 묵은 해결과제를 어떻게 풀어낼 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우선 내각 인선에서 호남이 차별받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측에서는 “비영남출신 인사를 초대 총리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측에서도 통합내각을 강조하고 있어 호남인사의 중용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고위직 인사에서도 지역균형에 비례해서 등용돼야 하고, 지역개발 공약도 충실히 이행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주요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문화수도 완성, 미래자동차 산업육성, 군공항이전, 미래형농수산업 육성 등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얼마나 이것들을 정책에 반영시켜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광주·전남의 경제를 끌어올리느냐 하는 것이다.

오는 5월9일 대선 결과에 따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우리나라가 새로운 혁신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 기저에는 촛불민심이라는 거대한 에너지가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추운 겨울 광장에서 서로서로 몸을 부비며 기다렸던 희망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부끄러움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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