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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시재생과 산업유산 다시보기

도시재생과 산업유산 다시보기
박준수 본사 상무이사

  • 입력날짜 : 2017. 06.12. 18:58

후기산업사회에서 한발 더 나아가 4차산업혁명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유산을 다시 보는 시도가 만개하고 있다. 개발의 소용돌이가 비켜간 도시의 한 귀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시간의 흔적을 되살려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는 도시재생 작업들이 활발하다. 가동을 멈춘 발전소, 기능을 상실한 공공건물, 외곽으로 옮겨간 철길 등 오랜 시간의 흐름속에 본래의 목적을 다한 존재들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유럽에서 일기 시작한 이같은 도시재생 바람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을 비롯 전국 도시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게다가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적극 시행할 계획이어서 도시재생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최근 민간의견 수렴에 착수했고, 조만간 실무 전담기구인 도시재생기획단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약에 따르면 매년 전국 도시노후지역 100곳을 골라 10조원씩 5년 임기동안 5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지역특화 콘텐츠에 기반해 살릴 것은 살리고 도로·공원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사업이다.



산업화시대 숨결 고스란히



광주의 경우 서구 양3동 발산마을이 지난 2014년부터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좋은 사례로 꼽힌다. 3년여에 걸쳐 마을컬러화사업, 조형물 설치, 상하수도 개선, 도시가스도입, 주차장 확보 등 하드웨어 정비뿐 아니라 작가레지던시, 청춘빌리지, 부뚜막공동체 등 사람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발산마을은 특히 자연입지 환경이 독특하다. 마을 앞으로 광주천이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발산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이색적이다. 게다가 60-70년대 일신·전남방직과 옛 광천공단의 배후지역으로서 근로자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산업화시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구멍뚫린 철판을 엮어서 만든 뽕뽕다리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같은 역사자원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생태환경과 접목한다면 매력적인 문화마을로 탈바꿈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인 1935년 공장가동을 시작해 광주산업화의 시발점이 된 일신·전남방직 역시 근대산업 유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광주시 북구 임동 100번지 일신방직 공장 4만3천여평의 부지에는 1934년 공장설립 당시 지어진 화력발전소, 집진시설, 고가수조(물탱크)와 저수지, 목조공장건물 등 80년 이상된 건물과 구조물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해방 이듬해 직원들이 세운 해방기념 국기게양대가 남아있어 근대산업유산으로서 보존·관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가운데 화력발전소와 고가수조, 집진시설 등은 사용이 중단된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사이 수차례 화재와 철거위기를 겪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사측은 화력발전소 건물지붕 일부가 태풍에 날아가는 등 안전상 위험이 우려돼 지난해 4월 진단을 실시한 결과 B, C등급 판정이 나와 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창고를 신축할 계획이었다. 다행히 김영호 회장이 공장을 방문했다가 이를 목격하고 중단지시를 내려 다행히 원형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80여년 애환 녹아있는 유산



보일러실과 터빈실 2개동으로 이뤄진 화력발전소는 붉은 벽돌로 지어져 80여년의 세월을 겪으며 고색창연한 빛을 내뿜고 있다. 또한 내부는 유리창과 리벳으로 조립된 철구조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특히 도르레를 이용해 창문을 개폐하도록 고안돼 눈길을 끈다. 발전소 바로 앞에 위치한 고가수조와 저수지도 산업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발전소에 물을 공급하는 한편 생산라인에 습도를 유지하고 화재시 진화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산동교 인근 극락강물을 끌어왔다. 지금도 배수관과 저수지 3기 중 1기가 남아있어 당시를 짐작케 한다.

공장건물 또한 목조구조로 설계되었음에도 80년 이상을 버티고 있어 내구성과 함께 디자인측면에서 관심을 끈다. 벽면은 벽돌이나 지붕과 서까래는 나무를 사용해 현대식 건물과 확연히 다른 모양새이다. 지붕의 경우 일차로 나무판으로 덮고 그 위에 유리섬유와 슬레이트 지붕을 얹히는 방식으로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매우 견고하다고 한다.

원면 등 원료를 보관하는 창고건물도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붉은벽돌로 지어진 창고는 천정에 도르레를 설치해 원료포대를 운반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서까래 사이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작업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울러 정문 앞마당에는 해방직후 직원자치체제로 운영 당시 1946년 직원들이 세운 해방1주년 기념 국기게양대가 남아있어 당시의 벅찬 감격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발산마을과 연계해 일신·전남방직 일부 시설 역시 산업유산으로 보존되고 활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경북도는 2014년 전국 최초로 ‘경상북도 산업유산’ 지정제도를 만들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산업시설을 체계적인 보존, 관광자원 등 지역 활성화에 활용하고 있다. 지역 유일의 전통 누룩 제조공장이었던 상주곡자를 비롯 전국 유일의 의성성냥공장과 산업체 부설 야간학교 교실과 기숙사가 남아있는 구미 오운여상을 지정했다.

우리도 숨겨진 산업유산을 발굴해 잘 가꾸면 콘텐츠 빈곤에 직면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활성화에 값진 보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