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쓰러진 모든 것은 언젠가는 서 있었다
유년시절 경험했듯이
힘차게 도리질을 하던 팽이는
꼿꼿하게 빙판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회전력을 잃은 순간 팽이는
빙판에 주저앉아 겨울바람을 맞는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치솟은 아름드리 잣나무
태풍에 넘어져 드러누웠다
세월의 사다리가 되어주었던 몸은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수런수런 자라던 벼들도
이삭의 무게에 눌려 쓰러진다
쓰러진 논바닥에 알곡 몇 알을 부리듯
우리는 서 있었던 날들의 기억을 땅에 묻는다
지붕이 무너진 폐가 담벼락에서
서투른 너의 낙서를 발견한다
네가 서있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유년의 시간은 아직도 그 언덕에서
노오란 무꽃을 피워 올린다
그리고 쓰러져갔던 것들을 목메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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