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시간 너머로
저무는 시간 너머로
내가 걸어왔던 길이 모래톱처럼 지워지고
그리운 이름들은 들꽃처럼 시들어
이제 폭풍이 지나는 언덕에 풀씨와 함께
추운 홑겹에 방황의 긴 여정을 준비한다
따뜻한 악수를 뒤로 한 채
일상의 굴레를 일탈해 낯선 풍경을 향해가는
선선한 바람결
마로니에 낙엽이 되어 늙은 시인의 시집 책갈피에
잠시 머물렀던 숙고의 시간
그 흔적은 활자만큼 오래 그대를 기억하지 못하고
울컥 가슴을 스치고 말겠지
오래전 부쳤던 편지를 꺼내 읽으며
잃어버린 추억을 회상하는깊은 밤
R.M.릴케의 장미와 책상 밑에 쌓인 빛바랜 낙서장
저무는 시간 너머로 부조처럼 서 있는 그림자
아득히 들려오는 종소리, 그 비밀스런 번뇌의
쇠북소리에 귀가 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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