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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완도에서 ‘잊혀진 근대’를 만나다

완도에서 ‘잊혀진 근대’를 만나다


전남 완도(莞島)군은 1896년 구한말 남해안 섬들을 모아 창설되었다. 역사적으로 통일신라 시대 해상왕 장보고의 거점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구 방어를 위해 머물렀던 가리포진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다 완도는 섬 지역임에도 일제강점기 근대유산이 상당수 남아 있어 그 역사적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청 주변 일대에는 옛 경찰서장 관사를 비롯 상가와 여관, 창고, 병원, 상수도 시설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건물들이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 객사가 위치한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목포와 군산 등 개항지 못지 않는 근대역사유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항지 못지않은 근대 역사유산

 

그만큼 완도는 일제가 눈독을 들일 만한 경제적 효용가치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실마리는 지리적, 자연적 조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완도는 일본(제주도)에서 전남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한데다 남해안 제1의 어장이자, 특히 김양식 산업의 중심지였다. 완도항 일대의 천혜의 해조류 양식 환경과 붉가시나무·황장목 등 양질의 산림, 그리고 면화 주산지가 제격이었다. 완도가 양식업이 발전한 것은 리아스식 해안으로서 수심이 얕고 조류의 순환으로 영양염류가 풍부해 해조류 산업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수산물 수탈이 용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제는 일본 본토의 김 생산이 부진하자 완도에 수산시험장을 만들어 어민들에게 김 양식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신기리 포구는 일본 어민들이 들어와 주낙으로 갯장어 고기잡이를 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가마구미’로 불리고 있다. ‘가마구미’는 만(灣) 형태를 이루고 있는 지형을 일컫는 일본말이다. 
이에 따라 1930년 완도면에는 전체 1천489가구 가운데 일본인이 99가구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수산물 대일수출을 계기로 전남에서 가장 많은 일본 상인이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성-완도-목포를 잇는 철도건설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이로 인해 완도는 일제의 침탈에 맞서 의병활동과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중 하나이다. 일제는 1909년 1월 당사도에 등대를 건설하고 관리인을 두어 운영하였는데 의병들이 이를 공격하여 등대주임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국권을 빼앗기자 열렬한 교육열이 번져 완도 여러 섬에서 사립학교들이 앞다퉈 설립, 신문명과 민족혼을 일깨웠다.
이처럼 완도는 근대 역사에서 목포, 군산 등 개항지 못지않게 수탈과 저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완도 역사에서 채 100년도 안된 근대 시간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매우 희미한 것 같다. ‘불편한 진실’ 혹은 ‘잊고 싶은 기억’이어서인지 몰라도 완도에서 근대는 잊혀진 연대기이다. 

 

“가리포 문화마을 조성하자”

 

필자 생각으로는 비록 일제강점기이긴 하지만 이러한 근대 흔적들은 학술적 및 역사적으로 조사해서 재조명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일제강점기 해조류 양식과 어업활동에 대한 연구성과는 완도군이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해조류박람회와 접목하면 더욱 풍성한 효과를 낼 것이다.
완도읍 성내리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대중병원이 있는데 해방 후 한국인이 경영하다가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고 빈 건물만 남아 있다. 그러나 현대식 2층 건물로 지어진 이 병원은 대나무숲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어 보존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병원 뒤로 올라가면 황장목 군락지와 상수도, 활터가 남아 있어 이 일대를 중심으로 마을투어 코스를 개발하면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돌담길과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비탈길에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 부산 감천마을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완도문화원이 구상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을 중심으로 3개 옛 길 코스로 개발하면 좋겠다. 1코스는 객사-마을, 2코스 군청-마을, 3코스 전망대-마을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근대역사거리’를 조성하면 장보고, 이순신에 이어 또 하나의 매력적인 관상상품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완도군은 최근 근대 유산에 대한 조사와 활용방안 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일제강점기 고등어 파시로 흥청거렸던 청산도에 대해 근대문화유산 등재추진하고 있다. 또한 완도읍 일제강점기 건축물과 가리포진 성 복원을 위한 지표조사 용역을 추진중이다.
완도군은 그동안 구도심 일대 도시재생에 맞춰 예산의 대부분을 주차장과 도로개설, 조명설치 등 시설공사에 투입해왔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본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