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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라도 천년, 호남문화 통섭적 고찰 필요

전라도 천년, 호남문화 통섭적 고찰 필요


2018년 전라도 정도 천년의 해가 떠올랐다. 드넓은 김제평야와 350리 물길을 거느린 영산강을 무술년 황금빛 햇살이 전설처럼 물들이고 있다. 전라도 땅에는 천년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 선사시대 유적부터 천년고찰, 누정문화, 동학혁명, 항일의병 전적지, 근대역사유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조상들의 숨결과 삶의 흔적들이 고즈넉이 남아 있다.
비록 1896년(고종 33년) 13도제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남·북으로 분할됐으나 한 울타리에서 천년을 함께 살아온 한 뿌리인 셈이다. 올해는 광주·전남·북 3개 시·도가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전라도 방문의 해’이다. 전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화와 도시화가 상대적으로 더딘 까닭에 다양한 역사문화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전라도 문화원형 재발견


따라서 ‘전라도 방문의 해’를 맞아 역사성과 지역성, 풍부한 스토리가 깃든 역사, 문화, 자연경관을 재조명해 전라도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노력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첨단과학시대에 까마득한 옛 것들을 들춰내 담론으로 삼는 데 대해 시대착오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도 인문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꽃을 피우기 어렵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이 있듯이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야 말로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빠르게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인간정신은 여전히 인문학의 자양분에 의해 배양된다.
이런 점에서 전라도의 색깔이 선명하면서도 역사성과 인문학적 향기가 물씬 나는 곳을 골라 호남문화를 통섭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라도의 원형질과 DNA를 재발견해 함초롬히 보여주는 것은 외지인들에게 전라도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지름길이다.

 

쌍둥이처럼 닮은꼴 유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전남지역과 전북지역의 문화유산은 마치 쌍둥이처럼 대칭을 이룬다. 나주목 관아-전주 전라감영, 목포 근대문화유산-군산 근대문화유산, 화순 고인돌-고창 고인돌, 동학 최후의 항전지인 장흥 석대들과 최초의 항전지인 무장 기포지, 구한말 항일의병 전적지인 화순 쌍산의소와 무주 칠연의총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함께 광주 북동성당과 전주 전동성당은 천주교의 성지로서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과 전주 한옥마을 역시 도심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관아를 옹위한 낙안읍성과 고창읍성,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와 김제 금산사가 대비를 이룬다. 단풍으로 유명한 장성 백양사와 정읍 내장사는 산맥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룬다.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과 선비들의 풍류가 깃든 진안 영모정, 강진 시문학파기념관과 고창의 미당 서정주문학관 역시 대칭을 이루는 문화유산이다. 끝으로 전북 변산반도에서 영광 백수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노을이 대미를 장식한다.
이처럼 두 지역 문화유산이 시대별, 지리적으로 정확히 짝을 이룬 경우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전남과 전북이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한 몸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전라도 정도 천년을 단순히 숫자의 기호적 의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천년의 지층에 뿌리내린 원형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근·현대에 이르러 호남이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호남문화 역시 왜곡되고 훼손된 측면이 없지 않다.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호남문화의 복원과 통섭적 고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전라도 정신’ 혹은 ‘호남사상’을 탐구하는 노정이 될 것이다.
광주·전남·북 3개 시·도는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으로 ▲전라도 이미지 개선 ▲전라도 천년 문화관광활성화 ▲전라도 천년 기념행사 ▲학술 및 문화행사를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편, 시·도별로 ▲문화유산복원 ▲전라도 천년 랜드마크 조성 ▲전라도 천년숲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한다.
여기에 덧붙여 광주·전남·북 3개 시·도가 머리를 맞대고 ‘한과 풍류’로 응결된 호남문화를 재발견하는 프로젝트나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천년의 의미를 더욱 드높일 것으로 생각한다.  /본사 주필·이사